[이승구 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21>사지와 유방절단 후 소작 지혈

이승구 선병원재단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

마취도 없이 칼과 톱, 망치 등을 이용한 무자비한 절단 수술이 이뤄진 시대가 있었다.

아주 오랜기간 이런 식의 수술이 집도됐다.

그림 1은 3세기 터키 살리시아 출신의 쌍둥이 의사인 코스마스와 다미안이 무마취로 칼과 톱을 이용해 다리 절단 수술을 시행하는 모습이다.

당시 수술 후 창상 치료와 지혈 방법으로는 다양한 고약치료와 불로 지지는 소작술이 최선이었다.

당연히 환자들은 극심한 감염과 고름으로 인한 통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환자들이 고통에 아우성치는 모습이 생생하다.

그림 1. 쌍둥이 의사의 다리 절단 수술과 병원 내부의 모습(1600년경, 암부로이스 프랑켄).

1741년 발간된 ‘외과 의료 필수 지식’을 보면 절단이나 그림 2처럼 유방절제술 후에는 지혈방지를 위한 소작이 필수적이었다.

이후 소작 지혈법은 염증발현 때문에 비소와 염화아연을 섞어 만든 고약으로 대체됐다. 후에 최초의 봉합사를 이용해 큰 혈관의 출혈을 예방했던 인물은 베살리우스였다.

유방암 절제 후 잦은 재발과 관련해서는 1600년대 초에 세베리노가 근처 유방 절제술(림프절 절제)을 시작했다.

그림 2. 유방절제 후 소작지혈법과 붕대(1741년 외과 필수지식 교과서 삽화).

프랑스 아카데미의 최초 의학장이었던 장 루이 프티(1674-1760)는 유방 근육 및 림프절의 근치술과 미용을 위해 유두 주변을 남겨 둘 것을 권했다. 특히 절단 후 고이는 출혈에 대한 배액 줄 삽입과 복부‧어깨를 이용한 붕대법이 강조됐다.

절단 수술 전과 후에 출혈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 루이 프티가 고안한 ‘나사 조임 지혈대’(그림 3)는 일정한 압력을 조절 할 수 있어 마취제가 등장하기 이전의 수술실에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됐다.

그림 3. 장 루이 프티가 고안한 하지절단 시 나사 물림 압박 지혈대(1743년 교과서 삽화).

18세기까지는 절단 후 소작하거나 영국 해군에서 처음 시작한, 절단면에 화약가루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것이 주로 시행됐다.

1812년 나폴레옹 전투에서 러시아 병사들로부터 얼음과 눈이 통증을 감소시키고 출혈이나 염증의 발현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마취 없이 칼과 톱만을 이용한 무지한 과거의 절단 수술은 1820년 에든버러의 로버트 리스틴과 제임스 시미가 마취제 에텔을 사용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그간 환자의 수술 전후 고통은 생각지 않고 몇 분 만에 서둘러 절단한 뒤 지혈도 하지 않았던 만용적 수술에 일대 혁신을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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