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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과 女 [41]

이광희2017.01.09 09:52:04

여불위는 신하로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인 승상이란 자리도 흡족하지 않았다. 다른 직위를 찾아볼 것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직위가 상국이었다. 상국은 중부가 되는 것이었다.

중부는 선왕의 형제를 말하는 것으로 신하로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위치였다.

중부란 호칭은 춘추시대 제환공이 관중을 높여 부른데서 이른 것이었다. 제환공은 관중의 인물됨이 출중함을 알고 그를 불러 관직에 임명하려 했다. 그러나 관중은 이를 수락하지 않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제환공은 그 연유를 물었다.

“신분이 비천한 사람은 존귀한 사람을 다스릴 수 없사옵니다.”

관중이 말했다. 자신의 신분을 현재의 위치에 놓고 관직에 나아가도 귀족들을 다루기 힘들다는 것을 지적했다.

제환공은 그를 귀족에 속하는 상경으로 봉했다. 그래도 나라는 잘 다스려지지 않았다. 제환공이 그 연유를 다시 물었다.

“빈한한 자는 부자를 다스릴 수 없는 법이옵나이다.”

제환공은 그에게 분에 넘칠 만큼 많은 재산을 주었다. 하지만 나라는 여전히 잘 다스려지지 않았다. 제환공이 다시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관중이 말했다.

“친족이 아닌 사람은 친족을 다스릴 수 없 사옵나이다.”

제환공은 그를 자신과 동등한 위치인 중부에 봉했다. 형제의 예로서 그를 대했던 것이다. 그제야 관중이 나라를 다스림에 거침이 없었고 제나라는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패권을 다투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중부에 오른 여불위의 손아귀에서 진나라의 모든 권세와 재화가 놀아나고 있었다. 신하들은 마땅히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조정 중신들의 회의에서도 그는 최상석에 앉아 군왕의 위치에서 하명했다. 여불위의 권세가 하늘을 찔렀다. 대신들은 일찍이 그를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으며 그의 눈 밖에 나는 순간 퇴출이었다.

당시는 퇴출이 단순히 낙향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의 말이 곧 법이 되었다.

진나라에서는 선왕들이 즉위와 동시에 능묘공사를 시작했다. 이 전통에 따라 진왕 영정도 이때부터 여산릉 축조를 명했다. 물론 여불위와 태후 조희가 그렇게 하도록 청했고 이를 진왕이 수락했다.

권세를 잡은 여불위는 수소문을 통해 조, 위, 한, 초, 제, 연나라 등 6국의 인재들을 자신의 문하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당시에는 권세 있는 이들이 현자들을 불러 모아 그 지혜를 이용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여불위 역시 그런 관례에 따라 6국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나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재라면 누구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그의 집 앞에는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매일같이 이 나라 저 나라에서 몰려온 문객들이 줄을 서서 중부 여불위의 면담을 기다렸다. 

그의 문하에는 3천명이 넘는 빈객이 모여 학문을 연구하고 국가의 장래에 대해 의논했다.

여불위가 이렇게 많은 인재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나날이 커져가는 진나라의 국력과 생기 넘치는 사회분위기. 그리고 미래에 대한 진나라의 야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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