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관이 여불위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소상히 고할 수 있었던 것도 삼경이 지난 뒤였다.  

“무어라? 상국의 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냐.”

진왕은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그러하옵나이다. 오늘 모인 문객의 수가 3천을 헤아렸다 하옵나이다.”

“괘씸한 것들......”

진왕은 미간을 찌푸리고 혼잣말을 했다.

“내일 소상히 진상을 파악하여 올리렷다. 다만 이 사실은 비밀로 하렷다. 알겠느냐?”

“여부가 있사옵니까? 대왕마마.”

다음날 새벽 내관이 침전을 찾았다. 당시 진왕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던 내관은 조고였다. 내관 조고는 전날의 상황을 소상하게 진왕에게 보고했다. 아울러 여씨춘추에 대한 내용도 빠짐없이 고했다. 진왕역시 여씨춘추가 지향하고 있는 바에 대해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국 여불위가 그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예사롭게 보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동안 진왕은 여불위의 의견을 거의 수용하는 선에서 정책을 입안했다. 수용했다기보다 여불위의 뜻에 따라 모든 정책을 결정했다.

그를 중부로 받들었던 만큼 그의 의견을 듣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여불위는 수시로 어린 진왕에게 나아가 자신의 뜻을 청했다. 그것은 청하는 수준을 넘어 권고하고 있었다.

진왕은 여불위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신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만큼 여불위의 힘이 강성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군주는 모든 일을 다 알고 친히 처리할 수 없습니다. 한 가지를 하게 되면 다른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니 결국은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사옵니다. 때문에 군주가 해야 할 일은 사람을 임용할 때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옵니다. 어진 군주는 인재를 찾는데 힘쓰고 일을 처리하는 데는 서툰 법이옵니다.”

진왕은 중부인 여불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속내를 갖고 있다 해도 그의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점이 그를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군주는 빈자리에 있어야 하옵니다. 검소하게 옷을 입고 지혜를 쓰지 않으면 여러 사람들의 지혜를 사용할 수 있고, 무능하면 여러 사람들의 능력을 부릴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여러 사람들이 먼저 행할 것이니, 무지, 무능, 무위의 세 가지는 군왕이 항상 갖추어야 할 덕목이옵니다.”

여불위는 이런 말로 진왕이 직접 통치권에 나서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요청이 아니라 명령처럼 들렸다.

진왕 영정은 여불위를 만날 때마다 늘 불쾌감을 숨겼다. 그것을 속으로 삭히며 씹고 또 씹었다. 매일 밤 궁녀들과 노닐며 색욕에 빠져 있는 것처럼 하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개구멍이라도 들어가라면 들어갈 생각이었다. 여불위의 강력한 권력아래서 살아남는 것이 내일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