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3>

누오보광장 마르크아우레스 황제기마상

베네치아광장의 통일기념관을 오른쪽으로 돌아서 완만한 코르노나타 계단을 올라가면 캄피돌리오 언덕(Piazza del Campidoglio)이다. 이곳은 로마 건국의 발상지인 로물루스 전설이 있는 곳으로서 포로 로마노의 가장 산꼭대기에 해당하며, 포로 로마노에서도 누오보 광장으로 통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모두 7개의 언덕이 있는 이곳의 언덕 2개를 합쳐서 캄피돌리오 광장을 만들고,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주피터 신전도 이곳에 지었다.

캄피톨리오 언덕에 있는 캄피돌리오 광장은 누오보 광장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이곳에 누오보 궁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캄피돌리오 언덕은 로마의 왕정기인 BC 575년 유피테르 신전을 세운 이래로 수많은 신전들을 세우면서 신들의 언덕이 되었다. 팔라티노 언덕이 로마의 권력자를 위한 언덕이었다면, 캄피돌리오 언덕은 로마의 신들을 위한 언덕이다.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1000여 년 동안 융성하던 로마제국이 4세기 경 서고트족에게 멸망후 오랫동안 폐허였던 이곳은 염소의 언덕 즉 ‘몬테 카프리노(Monte Caprino)’라 불리며 방치되었다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교황 바오로 3세가 재건했다. 교황 바오로 3세는 포로 로마노를 재건하려고 피렌체 출신인 유명한 건축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에게 이곳의 설계를 명령했는데,  미켈란젤로는 1536년 광장의 설계를 시작했지만 10년이 지난 뒤에야 첫 삽을 떴다.

그리고 그 후 60년이 지난 1605년에야 완공했는데, 미켈란젤로는 광장의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기 훨씬 전인 1564년에 죽었다. 그가 생전에 본 광장의 모습은 베네치아광장에서 누오보 광장으로 올라가는 세나토리오의 양쪽 계단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광장 바닥의 빛 문양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세계의 머리’로서 캄피돌리오의 존재감을 잘 보여주는 누오보 광장은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의 걸작으로서 미국 국회의사당 캐피털(Capitol)의 어원이 바로 ‘캄피돌리오’라고 한다. 이것은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의 성 베드로성당의 광장 한 가운데에 오벨리스크를 세워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과 열쇠로 디자인 한 것과 같은 이미지이기도 하다.

누오보 광장 한 가운데에 청동기마상이 있고, 포로 로마노가 있는 전면(남쪽)에 세나토리오 궁, 왼편에 누오보 궁, 오른편의 콘세르바토리 궁전이 광장을 에워싼 모습이다. 한 손에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은 팔을 쭉 뻗고서 뭔가를 가리키는 기마상은 로마 제정시대에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63~AD 14) 이후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이룬 5현제 중 마지막 황제인 마르크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nus: 121~180)인데, 그는 스토아철학자로서 기독교교리를 자신의 철학보다 한 단계 낮게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갈리아의 리옹(Lyon)에서 벌어진 기독교박해를 묵인했던 인물이었지만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274~337)로 잘못 알려져 파괴를 면하고 이곳에 옮겨서 보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기마상은 유일한 로마시대의 황제 기마상으로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는데, 실물은 카피톨리오 박물관에 보관중이고 광장에 있는 것은 이미테이션이다.

광장의 중앙건물인 세나토리오 궁은 위층을 증축하여 집정관의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로마시청사로 사용 중이고, 양쪽에 있는 누오보 궁전과 콘세르바토리 궁전은 고대 로마의 조각품과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카피톨리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청사를 왼편으로 돌아서 남쪽을 향하니, 저 먼 끄트머리에 눈에 익은 거대한 콜로세움 경기장이 보인다. 멀리서 경기장의 관객들이 부르짖는 함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캄피돌리오 언덕을 내려가는 왼쪽 기슭에는 1598년 세운 목수 요셉 성당이 있는데, 이곳은  로마시대 베드로가 투옥되었던 마에르티노 지하 감옥 터이다. 베드로는 캄캄한 이곳 지하 감옥에서 수감 중 간수와 죄수들을 감화시키고, 감방 안 바싹 마른 바위 틈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여 죄수들의 목을 축이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지하 감방까지 내려가 보았지만 두어 평이나 될까 싶은 그곳은 화장실이나 침상 등도 구분되지 않아서 우리네 시골집에 흔한 고구마 토굴 같아서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다.

누오보광장 마르크아우레스 황제기마상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