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공하옵나이다.”

초란은 생땀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어찌해야 좋을지 요리 조리 머리를 써보지만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대왕의 눈에서 벗어난다면 그길로 죽음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궁녀에게 희망이 있다면 대왕의 은총을 한번이라도 더 받는 것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은총 받을 기회가 왔는데 그것을 수포로 돌리자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안타까운 정도가 아니라 죽음이 기다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과인이 묻는 것은 다름 아니라 궁성에서 오가는 얘기가 듣고 싶다는 말이로다.”

그제야 초란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이판사판이었다. 상국 여불위가 전권을 휘두르고 있는 것에 대해 진왕이 몹시 못마땅해 할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궁녀들이 상국폐하에 대해 높이 칭송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사옵나이다.”

그러면서 초란은 고개를 숙인 채 진왕의 손끝을 살폈다. 진왕의 손가락이 민감하게 움직였다. 얼굴빛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렇게 생각지 않사옵나이다.”

초란이 당돌하게 말했다.

“미천한 계집의 입으로 이런 말씀을 고한다면 당장 능지처참을 당할지도 모르겠지만 소녀가 보기에 대왕마마께서 너무 외롭게 생활하시는 것 같사옵나이다. 그 점이 늘 소녀의 가슴을 아프게 하옵나이다.”

“과인이 외롭게 지내다니?

진왕이 그제야 표정을 풀며 자상한 말투로 물었다.

“궁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상국의 칭송에 후덕하면서 대왕마마의 안위에 대해서는 걱정하는 이들이 많지 않사옵나이다. 그러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나이다.”

기특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알아주는 궁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었다.
“궁내 분위기가 그러하더냐. 허참.”

진왕은 술잔을 들이키며 헛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직 너같은 이들이 있지 않느냐. 그래서 내게도 희망이 있단다.”

진왕은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지껄였다. 그 말끝이 서글프기도 했지만 사실이었다. 자신을 걱정해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지키고 있는 내관들 뿐이었다. 진왕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 밤은 늦은 시각까지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구나.”

진왕은 취기어린 눈으로 계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계집에게 말을 시키고 또 시켰다. 밤이 늦도록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흡족했다. 진왕 스스로 이렇게 하찮은 궁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날을 밝힌다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초란에게 수시로 찾아와 궁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고하도록 하명했다. 그것은 왕의 명령이기에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초란과 밤을 지새운 진왕은 늦은 아침까지 긴 잠을 청하고 해가 중천에 뜬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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