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23>수술의 변천II

이승구 선병원재단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

1800년대 중반기 맹장염 수술 장면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 있다. 크리스티안 샤드가 1929년 그린 ‘무마취 맹장 제거 수술’이다.[그림 1]

당시는 의술의 발달이 시작되는 개혁기였다. 마취를 전혀 할 수 없었던 과도기이긴 하지만, 외과학 교과서의 삽화들은 당시 사회 현상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는 신즉물주의의 전형적 특성을 보여준다. 우리 현대인의 눈에는 무자비한 사실주의가 아닐 수 없다.

1890년 비엔나 시민병원의 수술 장면을 보자.[그림2]

수술방을 개방해 의대생이나 의사들이 자유롭게 견학할 수 있었다. 마취는 물론 소독의 개념이나 공기를 통한 감염 등 수술실 전반의 청결시설은 확립되지 않은 시대였다.

수술과 내과치료 역사의 대변혁기는 19세기 중반이었다. 현미경의 발명(네덜란드, 안토니 반 레벤후크, 1632-1723)과 세포병리학의 태동, 병원제도의 점진적 확립, 나이팅게일(1820-1910)의 환자 돌봄과 병실 개선 등을 통해 의술이 환자를 치유할 진정한 능력을 얻었다.

그림1. 무마취 맹장 제거 수술(1929년 크리스티안 샤드, 뮌헨 텐바트 하우스).

프랑스의 나폴레옹 주치의였던 장 니콜라 코르시바르는 과거 오스트리아의 아우엔브르거(1722-1809)가 최초로 시도한 타진법(打診法)을 재정비해 활용했고, 르네 라에네크(1781-1826)는 청진기를 발명, 내과계 진단과 치료, 예후에 크게 기여했다.

외과계에서도 마침내 1745년 이발사-외과의사 협회에서 외과의사 협회가 분리 독립됐다. 이후 100여 년간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그림2. 비엔나 시민병원의 공개수술 장면(1890년 켈리크 만).

현대 외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존 헌터(1728-1789)를 위시한 외과의사들의 새로운 의료 기술이 속속 개발됐고, 미국의 험프리 데이브(1778-1829)가 아산화질소를, 윌리엄 모턴(1819-1868)이 에텔을, 그리고 제임스 심프슨(1811-1879)이 클로로포름 마취약을 개발했다.

드디어 마취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욤 뒤퓌트랑(Gullaume Dupuytren 1777-1835)이 노인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손·발바닥의 섬유막 구축증 (Dupuytren’s Contracture) 등을 최초로 발표하면서 연령의 증가에 따른 노인성 또는 퇴행성 관절질환들도 새로운 질병으로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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