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과인은 법을 칼날처럼 세워야 통치가 제대로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날처럼 혼란한 시기에는 그것이 최상의 통치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진왕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여불위도 마찬가지였다. 한 치의 양보 없이 자신의 의중을 진언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덕을 베풀고 의를 행하는 것이 가장 좋사옵니다. 이렇게 하면 상을 주지 않아도 백성들이 잘 따르게 될 것이며 벌을 내리지 않아도 사악한 행위가 그치게 될 것이옵니다.”

진왕이 눈초리를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왕의 숨소리가 조금은 거칠어지고 차를 마시는 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후루룩 하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찻잔이 차탁에 자주 부딪혔다.

“대왕께서는 덕을 베푸시고 백성을 사랑하면 백성들은 자연히 대왕을 어버이처럼 따를 것입니다. 또 백성들 모두가 대왕을 위해 즐겁게 죽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여불위의 행동에도 한 치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왕의 앞인지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잠재우고 찻잔을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둘의 대화는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지만 견해의 차이를 좁히지는 못했다.

여불위는 진왕이 덕을 베푸는 성군이 되어줄 것을 당부하고 조정을 물러났다.

그는 중부의 입장에서 분명히 국가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또 자신의 통치철학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것은 숱한 학자들의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한 치의 오차가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진왕은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빈자리를 지키도록 한 여불위가 못마땅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자가 있으면 엄벌에 처하였고 사형 등 중한 형벌로 위엄을 지키려 했다.

여불위와 진왕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진왕은 어떻게든 여불위에게 준 권력을 되찾아 친정체제를 구축할 계산이었다. 여불위는 가능하면 자신의 의도대로 진나라를 움직일 심산이었다.

신하들은 이들 두 권력 사이에서 분위기를 살피며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중부 여불위의 눈치만 살폈지만 이제는 진왕의 눈치도 살펴야 했다. 그의 나이가 들면서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 여불위가 자신의 통치 철학을 담은 ‘여씨춘추’를 공포했던 것이다.

여씨춘추에는 군주가 어떻게 해야 백성의 부모가 되며 어떻게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는지를 기록하고 있었다. 물론 여불위의 의도대로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곧 진왕의 통치에 문제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글로 분석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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