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의 팔자 고치는 좌우명] <13> 대도무문(大道無門)

한국 민주주의의 큰 산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金洪祚)와 어머니 박부연(朴富蓮)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경남고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장택상(張澤相) 총리의 비서가 되었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제3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됨을 기점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9선 의원의 경력을 남겼다.

철학박사·중화서당 원장
한국현대사는 ‘경제입국’과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그는 의원제명, 가택연금, 단식농성 등의 정치적 고난을 당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1990년에는 통일민주당을 이끌고 민정당의 노태우,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과 통합하여 많은 논란 끝에 민주자유당을 창당하였다.

이때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가 1992년 12월에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어 14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권위주의적 정치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후, 과감한 정치개혁을 통하여 이 땅에 민주주의의 기틀을 확실히 마련하였다.

임기 말에는 IMF사태를 맞아 정치적인 오점을 남겼으나, 그가 대한민국을 민주국가로 만드는데 1등공신의 역할을 했음은 모두가 인정하는 진실이다. 1994년에는 마틴루터킹 센터가 주관하는 세계적인 인권운동상인 ‘비폭력평화상’을 받았다. 2015년 11월 22일에 파란의 인생역정을 마감하고 향년 88세로 영면하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강력한 기질을 가졌다. 결단력과 승부욕, 투쟁심이 강하면서 대담하다. 그리고 주체의식과 자존심이 강하다. 이것이 곡절 많은 정치역정 속에서 굴함이 없이 자기 주도적으로 정치판을 이끌어갈 수 있게 한 원동력 역할을 했다.

그의 이러한 기질은 그의 사주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주에서 그의 주체는 기토(己土)이다. 본래 토의 성질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중심이 강하고 또 외부상황에 흔들림이 없다. 게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주에는 주체인 토를 도와주는 또 다른 토가 아주 많다. 이렇게 되면 사주가 아주 강해진다.

김영삼 전 대통령 좌우명
사주의 힘이 강한 사람들은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많다. 자칫하면 안하무인(眼下無人), 자기중심(自己中心), 유아독존(唯我獨尊)에 빠질 수 있다. 사주 상에서 보았을 때의 김 전 대통령은 충분히 그럴 소지가 있다. 그러나 그는 비록 강하지만 포용력을 갖추고 있다.

그의 주위에는 김동영, 김덕룡, 최형우 등을 위시한 여러 유능한 인재들이 포진해 있었고, 또 대중적인 지지 또한 아주 많이 받았었다. 외톨이가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이 천하의 인재와 인심을 얻어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그 비밀은 무엇일까. 바로 그의 좌우명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좌우명은 너무나 유명한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굵직한 붓글씨로 쓴 이 글귀는 우리 눈에 이미 익숙하다. 이 말은 '큰 도는 문이 없다'인데, 이는 선서(禪書)인 <무문관(無門關)>의 '대도무문(大道無門) 천차유로(千差有路)'에서 나온 말이다. 그 뜻은 “큰 도에는 문이 없어 길이 천 갈래로 다르게 나있다”이다. 즉 ‘큰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다’는 말이다.

이 이치를 안다면, 당연히 독단과 아집을 버리고, 세상을 여유롭고 다양한 눈으로 바라볼 포용력을 가지게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 좌우명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강함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해준 약침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좌우명의 덕을 크게 보았다. 포용력 없이 강하기만 하면 외톨이가 될지언정 우두머리는 되지 못한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사주가 가진 단점을 좌우명을 통해 잘 극복해 이 나라의 민주화를 이루고 또 최초의 문민대통령이 되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