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한해가 지났다.

진왕 영정이 21세가 되던 해였다. 즉위한지 9년의 세월이 지났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실권을 쥐고 정국을 농단하고 있는 중부 여불위와 어머니 태후를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이미 모든 권한을 그들이 쥐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리어 그들이 어떤 변을 일으킨다면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진왕은 매일 술을 마시며 설욕의 나날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귀를 세우고 그들을 내몰 빌미를 찾고 있었다.

한번은 내관 조고를 불러 물었다.

“어찌하면 조정 중신들의 속뜻을 알아볼 수 있겠느냐?”

조고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사옵나이다.”

“말해 보아라.”

“대왕께서 매일 술자리를 열어 한사람씩 불러들이옵소서.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 보시옵소서. 그러시면 신이 낱낱이 기술하여 보고하겠나이다.”

“흠 거참 좋은 생각이로다. 그러면 오늘부터 술자리를 마련토록 하라. 그리고 한 사람씩 불러 들이 거라. 알겠느냐?”

진왕은 조고에게 명했다.

때문에 궁에서는 매일 술판이 벌어졌다. 진왕은 하루를 빼지 않고 대신들을 차례로 불러들여 술을 같이했다. 그들이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혹은 누구의 편에 서있는 자들인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만취된 것처럼 흥청거리며 신하들이 어떻게 자신을 대하는지도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몇몇 신하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여불위의 통치에 대해 칭송하고 있었다. 사면초가였다. 자칫하다가는 여불위가 반란을 모의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마저 들었다. 현실적으로 그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진왕은 자신이 어리다는 핑계로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 여불위와 태후의 거세를 마음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

이런 가운데 이들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몇몇 신하들에 의해 조심스럽게 새어나왔다. 진왕은 그 소리가 희망이 싹트는 것이며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하들은 탐탁치 않는 표정으로 이들의 실정을 고하는 이가 없었다. 모두 여불위가 심어놓은 인사들이었으므로 그의 선행을 추켜세울 뿐이었다.

터놓고 얘기 할 신하도 없었다.

왕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죽이고 뒤로 물러나 있어야 했던 시간은 굴욕이었다.

아버지 장양왕이 겪었던 그 옛날의 치욕들이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볼모로 조나라에 보내진 일이며 어머니와 한단의 구석에서 숨어 살았던 어린 시절, 아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놀림거리가 되었던 자신…….

영정은 복받쳐 오르는 분노를 속으로 삭이며 왕권의 회복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여불위의 도움이 너무나 컸으므로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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