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5>

판테온 신전과 오벨리스크
로마제국의 도로는 큰길이라 해도 마차가 다닐 수 있는 폭 4∼5m쯤 될까 싶도록 좁아서 현대인의 눈에는 작은 골목길 같아 보이는데, 길바닥은 모두 한 변이 약30㎝ 안팎일 석주(石柱)를 타일처럼 촘촘히 박은 포장도로다. 석주는 로마 건국의 유적지인 포로 로마노가 계곡을 메운 늪지대 바닥을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서 도로며 광장의 바닥에 박은 것이 기원이 되어 이후 유럽 각국에서 본뜬 도로 건축의 한 모델이 되었다(2017.01.06. 포로 로마노 참조).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로마시대에 마차가 다니던 길은 오늘날 버스 같은 대형차량은 다니지 못하고 우리의 마티즈나 티코 같은 소형차만 다닐 수 있는데, 심지어 택시나 경찰 순찰차까지 이런 소형차들이니 마치 어린이들의 장난감을 보는 것 같다. 티코 같은 소형차 지붕 위에 경찰 특유의 빨간 불과 파란 불이 켜지는 경광등을 부착하고 다니는 것을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만일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마주 오는 차를 만나면 사람은 골목 한쪽으로 비켜서고, 또 교행 하는 차량이라면 잠시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차가 지나가면 후진했다가 다시 원래 가던 길을 간다. 이런 길은 요즘의 일방통행 도로와 비슷해서 로마인들은 이런 도로구조에 익숙해서 아무런 불편을 느끼기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도로 양쪽에 성벽처럼 높다란 대리석 건물들은 적어도 1,400∼500년 전 로마시대의 건물이다. 도시국가시절 수많은 전쟁으로 적과 싸우던 로마인들은 공격을 하다가 후퇴도 할 때 출입문 안으로 들어와서 출입문만 닫으면,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성벽이 되어서 추격하던 공격자들은 뒤쫓아 왔다가 후퇴하기도 전에 건물 위에서 집중사격 하는 화살을 맞고 죽어갔다고 하니, 아마도 대리석 건물과 좁은 도로는 로마인들의 사려 깊은 전략적 목적 때문인 것 같다.

신전내부 강단
트레비 분수에서 도보로 4∼5분정도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갑자기 광장이 나오고, 광장 한 가운데에 분수대와 오벨리스크 같은 높다란 석주가 있는 곳이 판테온신전이다. 판테온신전은 BC 27년 아우구스투스 대제의 양자이자 사위인 아그리파(최초의 로마황제)가 당시 로마의 모든 신들을 위하여 지은 신전으로서 그리스시대 이후 고대 로마의 신전 중 가장 거대할 뿐만 아니라 가장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신전이다. 판테온신전의 ‘판(pan)’은 ‘모든’이고, ‘테온(theon)’은 ‘신(神)’으로써 결국 ‘모든 신의 신전’이란 의미이며, 이탈리아 어느 도시에서건 성당이나 건축물의 교본으로 사용된 건물이다. 물론, 광장 바닥은 석주를 박았다.

그런데, 원래의 정문은 지금의 반대쪽에 있었으나 609년 비잔틴의 포카스 황제가 우상을 모시던 신전을 기독교도의 예배당으로 개조하면서 정문의 위치를 바꿨다. 이때 BC 5세기~ BC 4세기 중기에 그리스의 코린트에서 유행했던 화려한 문양의 코린트 양식으로 꾸몄는데,  포카스 황제는 16개의 코린트식 기둥 위에 삼각형 박공이 있는 경사지붕을 만들고, 출입문도 높이 7m의 거대한 청동문 2짝으로 만들어서 교황 보니파키우스 4세에게 기증했다.

출입문
당시 로마인의 건축기법은 건물 아래를 두껍게 쌓다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얇아지는 구조로서 건물 맨 아래의 두께는 6m이고, 꼭대기의 벽두께는 1.5m라고 한다. 신전의 높이는 43.3m이고, 입구에서 제단까지 길이도 43.3m이다. 원형건물인 신전 외벽에는 여기저기 뻥뻥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것은 로마 교황들이 그곳에 장식되어 있던 대리석상 등을 바티칸의 성 베드로성당을 지을 때 뜯어간 흔적이라고 했다. 판테온신전 앞의 커다란 대리석 오벨리스크는 폼페이에서 가져온 것이다.

아무튼 교황은 우상을 숭배하던 판테온신전보다 하나님을 믿는 베드로성당을 더 높게 지으려고 했지만, 석축공법으로는 그 이상 높게 지을 수 없어서 결국 포기했다고 할 만큼 판테온신전은 고대 로마인들의 기술의 한계를 상징한다.

판테온신전의 입장료는 없다. 정문을 들어서면 신전 내부는 겉모습과 달리 매우 조촐해서 가장 안쪽에 낮은 무대 같은 장치만 있을 뿐 넓은 돔 모양의 실내는 경기장처럼 휑하다. 오른편에는 1861년 이탈리아의 통일을 가져온 임마누엘 3세의 무덤이, 왼편에는 미켈란젤로의 뒤를 이어서 베드로성당의 성전을 그린 천재화가 라파엘의 무덤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천장 한 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는데, 지름이 9m나 되는 구멍을 통해서 전기시설이 없던 당시에 넓은 신전 내부를 고루 밝히는 햇빛으로 조명시설을 삼았다고 한다.

이런 구멍이 있어도 비가 새지 않는 것은 실내의 대류현상 때문이라고 하니, 새삼 고대 로마인들의 수준 높은 건축술을 엿보게 했다. 하지만, 판테온신전을 세 번 여행하던 중 한차례는 비가 내리는 날씨였는데, 빗줄기가 고스란히 새는 것을 직접 겪기도 했다. 먼 훗날 르네상스시대에 피렌체 출신 건축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는 판테온의 돔 양식을 모방하여 피렌체 두오모성당의 돔을 처음 만들었는데, 이로서 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인정받았을 정도로 판테온신전은 과학적인 설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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