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성공한 지도자를 바라는 마음에 부쳐

지난해 11월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30여분 가량 진행된 안희정 지사와 국회 출입 충청권 기자단 티타임 모습.

안희정 지사님께!

지사님, 안녕하세요? 정유년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났습니다. 2월의 첫날 인사 올립니다. <디트뉴스24> 서울팀장 류재민입니다. 요즘 무척 바쁘시지요? 날씨는 춥고, 일정은 늘 빡빡하니 감기라도 걸리지 않으실까 늘 걱정하는 마음입니다.

제가 지사님께 처음 편지를 띄운 날을 찾아보니 2015년 11월이더군요. 날짜로 따지면 448일만이고, 햇수로는 2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지사님께는 커다란 변화가 있으셨지요?

200만 충남도민의 지도자를 넘어 5000만 대한민국 국민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포부에 건승을 기원합니다. 저도 내일이면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한 지 꼭 2년이네요. 여전히 ‘정치’란 두 글자를 알아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입니다. 더 공부하고 정진하겠습니다.

지사님!

제가 지사님께 감히 다시 편지를 쓰는 이유는 지역의 기자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언론관(言論觀)’과 ‘경청(傾聽)’에 대해 직언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취재의 현장에서 지사님 강연이나 연설, 토론을 듣고 있으면 ‘말씀 참 잘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을 잘한다는 건 그만큼 머릿속에 든 사고와 지식이 분명하며, 전달력도 충실하다는 증거겠지요. 워낙 독서광으로 소문난 지사님인지라 다방면에서 두루 해박함이 느껴집니다.

그런데요, 지사님! 화술만큼 경청에 있어서도 그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면 국민들이 지사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칠 점은 고치고, 장점은 강점으로 살려나가야 한다는 게 제 짧은 소견입니다.

지난 2년간 국회를 출입하면서 저는 지사님과 밥 한 끼, 술 한 잔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저 뿐만 아니라 국회를 출입하는 충청권 기자들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석 달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 사이에 짬을 내 30여분 기자들과 가진 티타임이 전부였습니다.

그때 지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현장에서 자주 뵈니까 따로 만나지 않아도 이해할 줄 알았습니다.” 그 말씀에 제 가슴은 먹먹했습니다. 현장에서 지사님을 지켜본 기자들은 과연 지사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하는 마음 때문에요.

기억하세요? 저는 그날 지사님께 역설적인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지사님을 뵙는다는 생각에 어젯밤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지사님은 지역 기자단과 어떤 만남도 없으십니다.

지사님. 미국의 한 언론인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 성격의 칼럼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의문을 다시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내내 언론과 불화했습니다. 심지어 “지구상에서 가장 정직하지 않은 인간들”이라고까지 매도했습니다. 트럼프는 이미 미국 대통령이지만, 지사님은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분입니다. 지사님께서 충청권 기자들이 왜 국회에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주셨으면 하는 부탁입니다.

저희 지역 기자들은 대한민국 정치의 심장부인 국회에서 충청도의 이익과 권익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사명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충남도지사,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은 제대로 된 만남 한번 갖지 않고 계십니다.

지사님께서 중앙지 기자들이나 마크맨들과 식사를 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정말 이러려고 국회 출입하나’ 자괴감이 들 때도 더러 있습니다. 지사님께 밥 한 그릇, 술 한 잔 얻어먹지 못했다고 부리는 치기어린 몽니가 아닙니다.

지사님! 언젠가 국회를 출입하는 부산의 어느 신문사 기자가 충청권 기자에게 지사님에 대해 물어온 적이 있답니다.

지사님께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상태고, 문재인 전 대표가 부산 출신이기 때문에 그 지역 기자로서는 문 전 대표의 경쟁자인 지사님이 관심의 대상이겠지요. 그런데 충청권 기자는 그에게 “미안하지만, 저는 안희정 지사에 대해 잘 모릅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 일화를 듣고 나서 저는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만약 제가 부산 기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문 전 대표는 지역 기자들은 통 만나질 않아서 제가 그 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충청권 기자단은 그동안 지사님 참모진을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했고, 지사님께서도 전해 들으셨을 줄로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언론에 대한 무관심이 계속된다는 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지난 연말 도청에서 열린 기자들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불거진 소위 회원사 기자단과 비회원사 기자단에 대한 차별적 자리 배치와 운영방식도 결이 같다는 생각입니다.

중앙지와 지방지의 구분, 지방지도 회원사와 비회원사의 차별화로 “듣고 싶은 말만 듣겠다”는 게 지사님의 대 언론 마인드처럼 굳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사님! 대선 출마를 선언하던 날, 충남도정을 이끌어 오면서 가장 잘했다고 자신할만한 성과에 대한 질문이 나왔었지요.

지사님께서는 119 응급출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도민의 안전과 생명의 골든타임을 지켜낸 일은 지사님 입장에서는 가장 큰 일로 자랑할 만하고, 저 역시 공감합니다.

그런데, 즉문즉답을 보고 난 제 아내가 이렇게 묻더군요. “119 출동시간 단축이 7년째 도지사 하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니, 다른 일은 없어요?”라고요. 어쩌면 지사님의 핵심 지지층으로 볼 수 있는 30대 중반의 대한민국 여성 유권자가 던진 그 질문은 제 가슴에 의미심장하게 와 박혔습니다. 제 아내는 왜 그렇게 물었을까요?

언젠가 도청 홍보를 담당하는 실무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충남도정 성과는 아주 많은데, 지사님께서 일일이 외부에 자랑하는 성격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라고요.

재선 충남도지사 안희정을 향해 “그동안 한 일이 실체도 모르겠는 3농(農)밖에 더 있느냐”는 비판은 그저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사님! 지난 달 남경필 경기지사와 국회 정론관에서 행정수도 이전 기자회견 직후 복도에 나와 추가 브리핑을 하셨지요. 그때 저는 충청권 기자단으로 유일하게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정론관은 얼마 만에 오셨나요?” 지사님께서는 “무척 오랜만에 온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사님 말씀대로 광역단체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할 만한 일이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지사님, 제가 볼 때 세미나와 공청회, 토론회, 간담회를 위해 국회 의원회관은 자주 다녀가셨다는 건 불편한 진실입니다. 정론관을 들르지 않았다는 건 지역 기자실도 한번 찾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지사님의 대선 행보에 도정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여전히 높습니다. 대선이란 운동장 에서 뛰는 선수가 자기 터에서조차 응원 받지 못하면 어떻게 정권을 교체하고, 시대를 교체할 수 있을까요. 수신제가(修身齊家)해야 치국(治國)도, 나라를 평화롭게(平天下)도 할 수 있겠지요.

낮은 지지율도 비단 인지도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길을 따라온 ‘민주당의 적자’를 모르는 국민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지역 언론, 지역주민을 직접 만나 격의 없이 소통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셨으면 합니다. 내가 남의 말을 경청하고 바르게 이해해야, 남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번 대선은 말을 앞세우기보다 국민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멋진 봄날, 금의환향하는 지사님의 복사꽃 같은 밝은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돌아오는 길이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도록, 도민들이 꽃길을 열어 박수쳐 맞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7년 2월 1일. 국회 본청 175호 기자실에서 류재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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