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교사들이 모였다. 골치 아픈 학교 이야기는 하지 말자던 처음 약속은 어디 가고 서로 다투듯 교육 관련 이야기가 이어진다.
“요즘 중학교에서 참 황당한 것 중에 하나가 중학교 3학년 졸업을 앞둔 겨울방학에 자식을 멀리 기숙학원에 보내는 것이야.”
“무슨 기숙학원?”

“고입 예비 학생들이 전국 기숙학원들의 주요 모집 대상이라나 봐. 겨울방학에 보통 5주간 정도 특강을 통해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 학습하는 거야. 기숙학원은 주로 경기도 쪽에 있는데 종업식 날이 개강 날과 겹치는 경우에 하루 또는 이틀 체험학습을 신청하더라구. 그러니까 자기 자식들 하루라도 결석 처리하지 않겠다는 거지 뭐.”
“그러니까 기숙학원에 입소하기 위해 출석으로 인정되는 문화탐방 같은 체험학습으로 꾸민다는 거구만.”

중학교 겨울방학에 기숙학원까지 보내는 현실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모두들 혀를 차거나 머리를 내두른다.
벌써 기숙학원을 검색해 본 교사가 조곤조곤 설명한다.
“설 연휴도 정상 수업하고, 외출이나 조기 퇴소도 안 된다는데. 잠자는 시간만 빼고 공부만 하는 학생으로 만든대. 졸지도 떠들 수도 없다고 홍보하는데…. 시설들이 장난 아니다. 시골에다 대규모 강의시설과 기숙사를 세워놓고 아침 7시 30분부터 6시까지 정규수업, 나머지는 자율학습을 하는데 밤 11까지 한대.”

“그럼 얼마나 받는 거야?”
“두세 군데 봤는데, 대체로 280만 원 정도야. 웬만한 월급쟁이 한 달 봉급인데.”
방학은 교사와 학생이 학업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면서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다음 학기의 학업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방학을 방학답게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마치 전쟁터에 던져진 투사와 같이 공부와 한 판 붙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공부한 결과가 좋을지라도 남는 것은 무엇일까? 성적은 향상이 될지 모르겠지만, 잃는 것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입시 공부에 몰두하면서 혹독한 고통을 받아들인 결과는 공부 또는 학문에 대한 염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어린 시절 억압적으로 학습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경우 청소년기에는 자발적인 의지로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그 학생들은 부모에게 보여주기 위해 공부한다.

학교도 부모에게 보여주기 위해 다니는 경우가 꽤 많다. 이들이 학교에서 무슨 재미를 찾을 것인가? 그저 잠을 자는 것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수업시간에 하염없이 잠을 자는 학생들이 있다. 아무런 의지도 없이 시간만 때우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분명히 어린 시절에 억압적인 학습으로 상처를 받은 경우다.

억압적 환경에 억지로 공부시키면 부모 자녀 모두에게 실패 될 수도

기숙학원에 들어가 고난도의 과정을 거쳐 그나마 나아진 성적으로 보상받았다면 보람이라도 느낄 수 있겠지만 성적이 그대로거나, 더 낮아졌을 경우에는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갖게 되고  자신감을 상실하면서 열등감과 같은 콤플렉스에 빠지게 된다. 억압적인 고난도의 훈련을 거쳐야 했던 운동선수가 은퇴한 후에는 운동을 멀리하는 것은 즐겨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좋아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적어도 목표의식을 갖고 있어야 하고 자발적인 의지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억압적인 환경 속으로 밀어 넣어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실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설사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은 성적일지 모르지만 인간성에 깊은 상처가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 교육이 인성 교육에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기숙학원에 아이들을 집어넣는 부모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취업절벽이라 할 만큼 젊은이들이 어려운 현실에서 어떻게 하든 취업에 유리한 학교와 학과를 가기 위해 유치원 시절부터 입시 전쟁을 준비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질곡의 입시전쟁과 취업전쟁을 언제까지 치러야 할 것인가? 정말 지금과 같은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 자식만 이 고통을 견디고 끝내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곧바로 아이의 동생과 조카로 이어지고 또 다시 손주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간 본연의 따뜻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될 때는 과연 언제일까? 전쟁 같은 공부가 아닌 따뜻한 공부를 하고 싶은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교육개혁에 온 국민이 나서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