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한사람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초란이었다. 그러다 꿈에도 그리는 대왕을 알현했다. 이제야 꿈을 이루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기분을 가라 앉혔다. 더욱이 진왕의 사랑을 몸으로 받아보기는 지난밤이 처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다음부터 만남이 없을 거라니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진왕과 몸을 뒤섞지 않았을 때는 사내가 왜 필요한지 몰랐다. 많은 궁녀들이 사내 맛이 어떻다느니 할 때마다 그것을 괜한 소리로만 들었다. 하지만 이제 한밤을 지새우고 그 맛을 안 이상 혼자 지루한 밤을 보낸다는 것은 죽음보다 긴 고통이었다. 그렇다고 안 된다며 생트집을 부릴 수도 없었다.  

지엄하신 왕명인지라 거역하는 것은 곧 반역이며 불충이었다.

초란은 흐트러진 옷을 여미며 더욱 흐느꼈다. 

“대왕마마. 다시는 불러주지 않으신다는 말씀만은 거두어 주시옵소서.”

애원하듯이 말했다.

“아니 되느니라. 과인이 말하지 않았느냐. 막중대사를 위해 이제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섭섭하게 여기지 말고 돌아가거라.”

진왕의 말에는 파아란 냉기가 묻어 있었다. 더 이상 애원을 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나마 초란이기에 한마디라도 할 수 있었다. 다른 궁녀들이었다면 그마저도 내뱉지 못했을 것이다.

초란은 뒷걸음으로 침전을 물러났다.

정원을 넘겨다보고 있던 진왕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제부터 내 손으로 모든 것을 직접 관장하겠노라. 국가의 기강이 바로 설 때까지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로다. 누구에게 이 막중대사를 맡기겠는가. 아니 될 말이로다. 새롭게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과 함께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룩하리라. 그동안 춘추와 전국시대를 거쳐 오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피와 땀을 헛되이 버렸도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죽어갔는가. 이 모든 것들을 일소해버릴 수 있는 것이 천하통일이로다. 그것이 과인이 이 시대에 태어나 이룩해야할 과업이로다. 암 그렇고말고.’

진왕 영정을 이를 앙다물었다.

그랬다. 그에게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사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500년이란 세월동안 200만 명 이상의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갔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진왕은 단번에 그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천하의 통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진왕은 노애 사건을 빌미로 친위 쿠데타를 성공리에 끝낸 뒤 모든 것을 직접 관장했다.

조정 중신들을 새롭게 등용하고 매일같이 밤잠을 뒤로하며 결재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동안 여불위와 태후가 관장했던 모든 것들을 일일이 점검하고 수정했다. 바늘 하나에서 나라 전체를 움직이는 일까지 그의 결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효력이 없었다. 모든 것을 직접 챙기고 직접 관리했다.

천하에서 진왕이 모르는 일은 없었으며 또 있어서도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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