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마마, 밤이 야심 하였사옵나이다. 침전에 드심이 마땅할 줄 아뢰옵나이다.”

삼경이 지난 시각에 내관 조고가 문밖에서 여쭈었다.

“아직은 아니 되느니라. 결재해야할 서류가 쌓여있으니 이를 마저 끝내고 침전에 들겠노라.”

진왕은 그날 결재해야 할 서류를 저울 돌로 달아 놓고 그것이 끝나기 전에 편전에서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가 하루에 처리한 결재 서류가 1석에 달했다. 요즈음 말로 144㎏에 달하는 서류를 하루에 처리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종이가 없어 대나무편에 글을 쓴 목간을 사용했지만 그 량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여색은 물론 술도 가까이 하는 날이 없었다.

진왕은 선왕 장양왕과 조부 효문왕이 궁녀들을 과하게 가까이하여 명을 단축시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본인은 의도적으로 그것을 피하고 있었다. 내관들이 수시로 진왕의 침실에 궁녀들을 밀어 넣으려 했지만 호통만 당하기 일쑤였다.

내관은 자신과 내통하는 궁녀를 침전에 밀어 넣어 왕의 사랑을 받도록 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틈만 나면 예쁜 궁녀를 찾아 그들을 침전에 밀어 넣었다.

또 역대의 왕들은 그들이 넣어주는 궁녀를 못이기는 척하며 받아 들였고 열기가 번지는 밤을 매일같이 반복했다. 

그렇게 해서 죽어간 자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런 일을 반복한 것은 자고로 영웅이 되려면 여색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는 헛된 사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왕은 달랐다.

진왕은 일에 파묻혀 살았다.

아침 해가 뜨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편전으로 나갔고 그곳에서 일을 하다 삼경이 지나야 침실로 돌아왔다. 침실로 돌아올 때는 파김치가 되었지만 이른 아침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거뜬히 일어나 편전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밖에 내관 있느냐?”

“예. 대왕마마. 하명하시옵소서.”

“지난번에 올렸던 장계에 대한 회답이 어찌 아직 올라오지 않고 있느냐? 관할 부서에 일러 조속히 그 답을 가져오라 일러라.”

진왕은 선왕들이 쉽게 넘길만한 일들도 잊지 않았다. 그것을 꼼꼼히 기록하고 챙겼다. 

신하들은 그런 진왕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린 시절 승상 여불위와 태후의 섭정을 받을 때의 그 진왕이 아니었다. 때문에 두렵지 않을 수 없었다.

진왕은 궁밖에 봄이 가고 여름이 와서 그늘 막을 찾아드는 농부들의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가을을 맞았으며 단풍구경 조차 하지 못하고 겨울을 맞았다.

그렇게 한해를 보냈다. 

그런 가운데 얄궂은 보고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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