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그렇게 한다면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설 수 있는 무리가 함양궁에 전혀 없다고도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길게 숨을 내쉬며 진왕은 편전을 오갔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만은 사실이었다.

진왕은 내관에게 집필묵을 준비토록 하고 조용히 앉아 왕명을 적어 내려갔다.

다음날이 되면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곳에 옥쇄를 찍게 하고 그것을 밀봉하여 날이 밝는 대로 하남 땅에 있는 여불위에게 보내도록 명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왕명을 전하는 파발마가 하남 땅으로 내달렸다.

한편 하남 땅에 내려와 매일같이 빈객들과 어울리며 재기를 꿈꾸고 있던 여불위는 그날도 몇몇 빈객들과 술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몇 차례 술잔이 돌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취기가 감돌았다.

“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신 승상폐하께서 함양성을 벗어나 이곳 누추한 곳에 기거한다는 것이 못내 소인을 가슴 아프게 하나이다.”

빈객 이사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이곳보다 더 편한 곳이 어디 있겠소. 그동안 많은 날들을 나는 일밖에 모르고 살았소. 이곳으로 와서야 비로소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깨닫고 있다오. 그러니 염려를 거두시오.”

“승상폐하께옵서 어떻게 이런 누추한 모습으로 삶을 논하시옵나이까?”

“누추하긴 뭐가 누추하오. 오늘도 내가 좋아 찾아준 빈객들이 있는데. 신선이 따로 있겠소. 내가 신선이 아니겠소?”

여불위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의 웃음에는 씁쓸함이 묻어있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중부란 위치에서 오랜 기간 전권을 휘둘렀던 여불위를 보았던 빈객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남 땅에 내려와 기거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누추하게 보였던 것이다. 이점은 여불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내친 진왕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을 역모의 수괴로 몰아 내친 왕에게 다시 도전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런 마음을 먹는다손 치더라도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빈객들이 자신을 부추기는 말을 할 때마다 자제를 요청하며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때였다.

시종이 부리나케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상국폐하. 조정에서 사자가 왔나이다.”

“사자라니?”

여불위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물었다.

“왕명을 가지고 왔다하옵나이다.”

그제야 여불위는 눈을 지그시 감고 술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채비를 갖추고 사자를 맞았다.
여불위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불운한 기운이 감돌았다. 빈객들도 백발이 성성한 여불위가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에 분개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왕명을 전하기 위해 내려온 사자를 탓할 수도 없었다. 시국이 하수상하니 어쩌겠는가, 탄식할 뿐이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