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잠시 뒤 함양궁을 향해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랑채로 사라져버렸다. 비틀거리며 건물 모퉁이를 돌아가는 여불위의 뒷모습이 지는 해를 보는 것 같았다.

“데리고 살았다지만 이미 선왕의 아내가 된 태후를 다시 간음했노라. 뿐만 아니라 왕들을 둘이나 독살하였으며 진나라의 왕통을 끊고 내 씨를 임금의 자리에 올렸도다. 내 죄가 이럴 진데 황천인들 용납하겠는가?”

그는 혼잣말을 읊조리며 눈물을 떨구었다.

여불위는 그길로 극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불위가 죽었다는 소식이 진나라 전역에 전해지자 그를 따랐던 많은 문객들이 문상하며 조의를 표했다. 여불위의 집에는 연일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호상은 여불위를 가장 지근에서 모셨던 심복 이사가 맡았다.

그는 상주를 대신하여 조문객을 맞았다. 하지만 조문객은 끊이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선채로 맞았지만 줄은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한편 여불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한 진왕은 못내 우울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지만 자신의 생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닌가. 또 사주한 것이 자신이 아니었던가.

도리어 속이 시원할 것 같았지만 몇날 며칠이 지나도 생부를 죽게 만들었다는 괴로움이 가시지 않았다.

진왕은 오랜만에 내관 조고에게 주안상을 준비하라고 일렀다. 술을 마시지 않고 고통을 참아내는 것은 더없는 고역이었다.

침전에 주안상이 들어가자 조고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왕마마. 어찌 홀로 술을 드시오니까? 술 따를 이가 있어야 하질 않겠나이까?”

진왕은 아무 말 없이 술잔을 자작하여 기울였다.

말이 없다는 것은 그렇다는 뜻이었다. 조고는 급히 내궁에 전갈을 보내 미모가 빼어나고 말재주가 비상하다고 알려진 궁녀를 불러 들였다.

“너는 오늘 대왕마마를 특별히 잘 모셔야 하느니라. 심기가 몹시 불편하시오니 그 점을 유념하여라. 자칫 대왕마마의 심기를 더욱 어지럽힌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라. 알겠느냐?”

조고는 자신의 앞에선 궁녀에게 단단히 일렀다.

궁녀는 고개를 조아리며 연신 그러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녀는 연화라는 궁녀였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눈빛이 강렬하여 사내들이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기만 하여도 자지러질 정도로 색기가 흘러 넘쳤다.  

잘록한 허리와 매끈한 종아리, 몸에 비해 넉넉한 가슴은 내관들조차 침을 흘리기 일쑤였다. 더욱이 그녀의 말솜씨는 당할 이들이 없었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듯 매끄럽게 이어지는 목소리와 감칠맛 나는 말투는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내관들은 심심하면 그녀와 말장난하는 것을 즐기곤 했다. 자신들이 사내구실을 할 수 없어 넘보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구석으로는 늘 그녀를 흠모하곤 했다.  연화는 조용히 침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사뿐히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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