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11>

노트르담 성당
파리 노트르담 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은 성당의 역사나 유래 이외에 1831년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 1802~1885)가 발표한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가 영화화된 이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성당인데, 노트르담의 노틀(Notre)은 ‘우리의’, 담(Dame)은 ‘숙녀’ 즉,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파리는 2,000여 년 전 원주민 갈리아인들이 센 강(La Seine)의 작은 섬 시테(Citê)에서 처음 정착했다가 지금과 같은 대도시가 되었는데, 494년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Clovis)가 파리를 탈취한 뒤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파리 시내를 약12.8km가량 곡선으로 흐르는 센 강은 시테 섬과 생루이 섬을 에워싸는데, 센 강의 옹벽에는 배들을 정박시할 떼 묶었던 커다란 철제 고리들이 지금도 남아있다.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시테 섬은 한강의 여의도처럼 파리의 법원, 경찰청등 관공서는 물론 수많은 성당과 상가가 밀집한 파리의 중심지가 되어 1578년 시테 섬으로 연결되는 최초의 다리 퐁네프(Pont Neuf) 이후 센 강에는 모두 34개가 놓였다. 그 중 기차나 지하철만 다니는 철교가 2개, 자동차전용 다리가 2개, 보행자 전용다리가 3개, 차량과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다리가 27개인데, 파리 매트로 4호선 시테역이나 매트로 7호선 퐁네프 역에서 내린 뒤 퐁마리(Pont Marie)까지 걷는다면 시테 섬을 골고루 돌아볼 수 있다.

퐁네프다리를 건너자마자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로 처형할 대까지 가뒀던 형무소를 비롯하여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아름다운 생트 사펠 성당(Eglise Sainte Chapelleie) 그리고 고딕 양식의 걸작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고, 노트르담 성당 뒤편으로는 넓은 요한 23세 광장(Square Jean ⅩⅩⅢ)이 있다. 
 

파리 지적원표
노트르담 성당은 파리 매트로 4호선 시테 역에서 내리면 약2분, 4호선 생미셸(St-Michel) 역에서 내리면 약 3분쯤 걸리는데, 오늘날 파리의 중심지가 된 노트르담 대성당  광장에는 파리시의 지적원표가 되는 8각형의 청동원표가 묻혀 있다. 파리는 서울의 한강처럼 센 강을 기준하여 3등분하는데, 파리시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사방 9.6km를 넘지 않는다.

노트르담 성당의 입장은 무료이지만, 영화 ‘노트르담에서 꼽추’에서 종지기 콰지모도가 시간마다 종을 울리던 종탑까지 올라가서 성당과 파리 시내를 조망하려면 10유로를 내야 한다. 만일 뮤지엄 패스가 있다면, 종탑 입장은 무료다. 중세 유럽에서 성당은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지배해온 중심지여서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는 주요한 관광코스인 것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전통사찰들이 오랫동안 사찰이라는 건축물을 비롯하여 불화라는 미술, 불상과 석탑 등으로 대표되는 각종 조각물과 공예품을 보여주는 문화재의 보고인 점과 일맥상통한다.

성당 지하무덤 입구
그런데, 유럽에서는 이런 종교시설을 입장하는 것은 무료인 반면에 관람객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은 유료로 운영하고 있는 점과 반대로 우리나라는 문화재인 사찰에 입장하려면 문화재관람료라는 이름으로 입장료를 내고, 정작 화장실 이용은 무료라는 것은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는 동서양의 정부당국의 자세가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프랑스에 기독교가 정착되면서 6세기에 시테 섬에 갈리아-로마 시대에 세웠던 주피터 신전을 세웠던 헐어내고 그곳에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었는데, 1163년 모리스 드 쉴리 주교는 노트르담 성당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짓기로 결정했다. 폭 50m, 길이 130m, 높이 35m의 노트르담 성당은 착공후 182년이 지난 1345년에야 준공되었는데,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에 큰 피해를 입고 포도주 창고로 사용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Napoléon I)가 성전으로 회복하면서 자신의 대관식도 이곳에서 거행했다.

노트르담 성당 출입문
성당은 3개의 출입문이 아치형 나뭇잎 모양으로 만들어졌는데, 왼쪽은 성모 마리아, 오른쪽은 성녀 안나, 가운데 문 위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렸던 ‘최후의 심판’ 모습의 조각을 대리석 위에 새겼다. 또, 3개의 문 위에 28명의 입상(立像)이 한 줄로 세워져 있는데,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이 조각상들이 역대 프랑스 임금인 것으로 알고 모두 파괴했다가 뒤늦게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이스라엘과 유대의 임금들이라는 것을 알고 복원했다. 이곳을 ‘그랜드 갤러리’라고 하며, 그랜드 갤러리 위 3층에 해당하는 한 가운데에 있는 지름 13m에 이르는 커다란 유리창을 “장미의 창(Rosace)”이라고 한다. 장미의 창에는 각각 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직경 5m나 되는 둥근기둥이 성당 안을 5개의 복도로 나눈 노트르담 성당에는 동시에 9,000명이 입장할 수 있다고 하며, 특히 남쪽과 북쪽의 유리창에 그려진 형형 색상의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은 유명하다. 노트르담 성당은 오랫동안 파리 왕조들이 사랑하는 성당으로서 수많은 임금과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된 장소였으며, 수많은 왕족들이 세례를 받았다. 또, 근래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에 망명정부를 세웠던 제5공화국의 드골 대통령, 그리고 1996년 미테랑 대통령의 장례식도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성당 지하에는 유명한 주교와 명사들의 무덤이 있다.

그리고 소설과 영화로 잘 알려진 종지기 콰지모도가 머물렀던 노트르담의 종은 사실 모두 5개가 있는데, 가장 큰 종은 남쪽 탑에 있는 엠마뉘엘 종(Emmanuel)으로서 무게가 13톤이 넘는다. 엠마뉘엘 종은 매일 시각을 알리고 또 여러 행사나 전례를 알리며, 북쪽 탑에는 바퀴 위에 붙어있는 4개의 종은 흔들리면서 울린다. 이 종들은 예전에는 수동으로 작동했지만, 지금은 모두 전기모터로 작동한다. 이 종들에는 작은 건반악기의 연주와 조음하기 위한 외부 해머들이 있다.

성당 첨탑과 센강

성당 옆 모습.

성당 내부
노트르담 3층 정미의 창

노트르담 성당 출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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