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앞에 나아가 절을 올리지 않는 것은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며 이는 곧 거역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살아남기 힘든 불충이었다. 그럼에도 돈약이 그러한 서한을 올린 것은 진왕의 그릇됨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진왕은 그 말을 그대로 수용했다.

“과인에게 절을 올리지 않아도 좋으니 만나보았으면 하오.”

진왕은 이런 내용의 친서를 적어 돈약에게 전하게 했다.

뜻밖의 대답은 들은 돈약은 그길로 진왕을 배알하기 위해 조당에 나갔다.

진왕이 용상에 앉아 있고 그 아래로 신하들이 줄지어 서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숙연했다.

등치가 작고 생김새가 빈약한 돈약은 그 한가운데 꼿꼿하게 앉아 진왕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대의 이름이 돈약이라고 했소?”

“그러하옵나이다. 대왕마마.”

“과인이 듣기로 그대의 지략이 매우 출중하다기에 만나보고자 했소. 그래 과인에게 들려줄 말이 있다면 한번 해보시구려.”

“대왕마마. 그에 앞서 신이 드릴말씀이 있사온데 들어주시겠나이까?”

“좋소. 말해보시구려.”

“대왕마마. 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올리는 말씀이오니 귀에 거슬리시더라도 새겨들으셔야 하옵나이다.”“무슨 말이든 해보시오. 새겨들으리다.”

돈약은 또록또록한 말투로 태후를 태후궁에 감금한 문제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했다.  

“대왕께서는 비록 만승을 거느린 군주가 되셨지만 효자라는 이름이 없사옵니다. 아울러 태후궁에서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지만 효도의 실체가 없사옵니다.”

돈약의 말을 듣자 진왕은 얼굴이 붉어지며 불쾌한 심기가 감돌았다. 이런 표정을 본 신하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결단코 어떤 불미스런 일이 일어날 조짐이었다. 그러나 진왕은 더 이상 노여움을 내색치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돈약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고 있음이 확연했다.

“궁색하게 변명하고 싶지 않소. 하지만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는 것을 그대가 모를 리 없지 않소.”

진왕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알고 있사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변명이옵니다. 만백성의 어버이께서 효를 행하지 않으면서 무지랭이 백성들에게 효를 행하라고 한다면 그들이 따르겠나이까. 바라옵건대 태후마마를 방면하시고 효를 다하는 모습을 만백성들에게 보이시옵소서. 그래야만 백성들이 대왕마마를 어진 임금으로 받들어 섬길 것이옵나이다.”

진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그의 말대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것은 과인이 좀 더 숙고한 후에 결정토록 하겠소.”

“황공하옵나이다. 대왕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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