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35>

현대백화점그룹이 어제 대전시 출입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보내 아웃렛을 조속 추진하라고 했다. 현대는 "대전시 업무가 지연돼 사업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시의 명확한 회신이 없을 경우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대는 또 "대전 아웃렛이 타 지역에 비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고 금융비용 부담으로 사업성이 악화되고 있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대전시와 시민에 대한 압력을 넘어 협박 수준이다. 지역에 들어와 아웃렛 장사하겠다는 기업이 인구 152만 광역시를 상대로 이렇게 큰 소리 치는 경우가 또 있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현대가 제출한 지역상생 및 경제 활성화 계획을 조만간 결정하겠다"는 시의 반응이다. 발끈하기는커녕 조속 추진을 화답하는 모양새가 영 이상하다.

아웃렛 계획안 제출 두 달 만에 처리 독촉하는 현대백화점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업자, 그중에서도 건설업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불평은 지자체로부터 허가 하나 받으려면 말단 공무원에게도 수없이 굽실대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건축허가 과정이 까다롭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역 소상공인들이 생존권을 외치며 반대하는 대형 아웃렛을 대전에 건립하려는 현대는 계획안 제출 두 달 만에 처리를 독촉하니 주객이 바뀐 꼴이다.

대전시민이 현대에 아웃렛 만들어 달라는 민원을 넣지도 않았고 3만평 대형매장에 지역상인들만 장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웃렛이 생겼다고 전국에서 쇼핑객이 인산인해를 이룰 가능성도 거의 없다. 상인들은 할인점 하나 들어와도 원자폭탄을 맞은 것처럼 반경 1㎞이내 영세상점들이 초토화 된다고 아우성인데 현대는 대체 뭘 믿고 조속 이행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현대가 대전을 상대로 금융비용 증가를 운운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시가 현대를 꼬드겨 땅을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현대 스스로 업자로부터 3만평을 매입해 놓고 왜 대전에 볼멘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전국적으로 백화점, 아웃렛 등 쇼핑시설이 넘쳐 나는데 대전시가 지역 상인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아웃렛 조성을 서두를 이유는 전혀 없다.

현대가 아웃렛을 짓겠다는 유성구 용산동 땅이 상업용지가 아닌 '관광휴양시설용지'이며 대덕연구개발특구의 기본방향에 맞아야 개발가능하다는 것은 현대가 더 잘 알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대덕테크노밸리 조성 때 연구자들을 위한 숙박·관광휴게시설을 조성할 목적으로 이 땅이 구획됐고 '호텔용'이라 주변시세보다 저렴하게 분양됐다. 하지만 사업성이 낮아 50층짜리 호텔이 무산됨으로써 10년 이상 놀리는 신세가 됐다.

10여년 숙박관광휴게시설로 용도가 지정돼 있던 대전시 유성구 용산동 대덕테크노밸리 내 9만9690.9㎡(약 3만157평, 빨간색 부분) 부지를 현대백화점이 매입해 아웃렛 건립을 계획 중이다.
권 시장 대기업 특혜 의혹으로 아웃렛 사업계획서 반려

전임 박성효·염홍철 시장 때 이 땅에 호텔 대신 주상복합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용도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맞았다. 그런데 권 시장 취임 직후인 2014년 8월 아웃렛 조성 계획이 접수됐고 반년 새 교통영향평가와 주민공람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를 거치면 아웃렛이 가능한 상황에서 <디트뉴스>가 용도변경과 대기업 특혜 의혹을 집중 보도하자 결국 사업신청서가 반려됐다.

현대는 2014년 말 3만여 평을 평당 300만원도 안 되는 헐값에 샀는데 상업용지가 되면 평당 600만 원에서 많게는 1000만 원 이상 올라 아웃렛 수입 외 땅 값만으로도 앉은 자리에서 수천억대의 시세차익을 본다는 게 부동산 업자들의 분석이었다.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1,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은 권 시장에게 특혜 의혹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치명적이었다.

권 시장은 선거법 위반 혐의는 벗었지만 지난 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파기환송심에서 또 다시 징역형을 선고받아 낙마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전시가 대기업의 아웃렛 건립에 속도를 낸다면 오해를 살 게 분명하다. 권 시장 취임 초반 시작해 1차 반려한 사업을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둔 시점에서 강행하는 것은 시장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대가 제출한 사업계획이 조만간 확정된다 해도 부서 간 협의, 사업설명회, 주민공람, 건축심의 등 시간을 요하는 행정절차가 깨나 많다. 무엇보다도 대형 쇼핑몰의 입점 자체를 반대하는 영세상인들과 시민단체를 설득하는 일부터가 난관이다. 권 시장의 대법원 판결이 아니어도 정상적인 행정절차를 밟다 보면 내년 지방선거시기에 도달해 이 건이 이슈로 부각할 것이다.

현대가 한 치의 하자도 없는 계획을 내놨어도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대규모 개발행위는 대전시와 권 시장은 물론 기업까지도 의심 받기 충분하다. 현대가 아웃렛 건립을 왜 서두르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수장의 재판으로 어수선한 지자체를 압박해 사업을 독촉하는 것은 자칫 대기업 갑질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아웃렛 조성이 시급을 다투는 대전의 현안도 아니다. 대전시와 현대가 파트너라면 좀 늦더라도 시민과 함께 가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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