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수년을 공부한 이사는 어느 날 스승 순자 앞에 나아갔다. 큰절을 올리고 스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

“스승님, 이제 제가 스승님을 하직하고 세상에 나아가 출세를 하고자 하옵니다.”

뜻밖의 이야기였다.

“나는 세상이 너무 어지럽고 분분하여 물러나려 하는데 어찌 그대는 왜 하필이면 이런 때에 나아가려 하는고?”

순자는 조용하게 물었다. 한참을 더 배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벌써 문하를 떠나겠다는 발상이 가당찮았다.

“사람은 때를 얻으면 놓치지 말라 했습니다. 지금 만승의 제후국들은 서로 다투는데 각국의 정사를 맡아보는 사람들은 거의 유세객이므로 이런 때야 말로 유세객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사람이 낮고 천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새나 짐승들이 먹을 것을 보고도 굶주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낮고 천한 것보다 더한 부끄러움은 없습니다. 또 가난보다 더한 슬픔은 없습니다.”

이사는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순자는 더 이상 잡고 싶지 않았다. 또 잡는다고 해서 그가 머물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 어디로 가려는고?”

순자가 물었다.“진나라로 들어갈까 하옵니다.”

“초나라에서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그곳에는 왜?”

“초나라는 귀족신분이 아니면 관직에 나아갈 수가 없으며 높이 오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진나라는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곳에서 천하의 인재를 모으고 있다니 그곳에 가서 기회를 엿볼 계획입니다.”

이사는 하직인사를 하고 그길로 진나라 함양으로 들어가 문신후 여불위를 찾아갔다. 그것 역시 무작정이었다. 당시 여불위가 무소불위의 실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발탁된다면 관직에 나아갈 수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이사는 여불위의 집 대문간에서 며칠을 기다리고 난 뒤에야 겨우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대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

여불위가 위엄을 갖추고 물었다.

“초나라 사람으로 순경의 문하에서 수학했습니다.”

“무어라 순경의 문하에서? 이 혼란한 시기에 유가의 학설을 배워 무엇에 쓰려고?”

여불위는 고개를 돌렸다.

“저는 유학을 배운 것이 아니라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무어라?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고 했느냐?”

여불위는 그제야 고개를 바로하고 이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하옵니다.”

여불위는 그와 마주앉아 제왕학에 대한 이사의 논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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