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한 지역에서 큰 사업을 벌이면 그 지역에서 환영하는 게 당연하다.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서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라도 반겨야 할 처지다. 그러나 모든 사업에 박수를 보낼 수는 없다. 도시계획을 망치거나 지역의 상인들이 큰 피해를 입는 사업이라면 함부로 허가해줄 수 없다.

현대백화점이 유성구 용산동에 추진하는 현대아웃렛 사업은 크게 도시계획상 문제와 지역 상인의 피해라는 점 때문에 진행이 중단됐던 사업이다. 이 땅은 ‘대덕테크노밸리 지구’의 호텔 부지로 계획된 땅이지만 호텔로는 수익성이 떨어지자, 사실상 대형 판매시설인 아웃렛 사업으로 용도를 바꿔서 사업신청이 됐다. 이 때문에 땅값 차익에 따른 특혜 문제도 제기됐었다.

대전시는 이 사업을 허가할 수도 있다. 호텔부지로 계획되었다고 해도 정말 사업성이 없다면 아웃렛으로 허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변경에 따른 대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도 없이 슬쩍 사업 허가를 해주려다가 특혜의혹을 받으면서 2년 전 대전시장 스스로가 중단을 선언한 사업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전시가 현대 측의 압박을 받고 허가를 내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 측은 사흘 전 보도자료를 내고 “DTV 관광휴양시설용지 본래의 취지와 목적에 맞게 개발 방향을 수정하고, 대전시 요청사항인 지역상생 및 경제 활성화 계획을 적극 반영해 올 초 세부 개발계획을 대전시에 신청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가 지연되고 있어서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전시는 16일 ㈜현대백화점으로부터 받은 대덕테크노밸리 용산동 관광휴양시설용지에 대한 세부개발계획 제안서에 대해 검토 및 행정절차를 진행키로 결정했다. 사진은 현대아웃렛 조감도.
안 들어주면 대전시 손해라는 대기업 압박과 굴복

그러면서 “사업 진행에 대한 대전시의 명확한 회신이 없을 경우 부득이 사업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고용 효과와 대전시에 대한 세수기여도가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물론 그 수치를 믿기는 어렵다. 결론은 대전시가 허가를 빨리 안 해주면 우리는 손을 뗄 것이고, 그러면 대전시만 손해라는 말이었다. 대전시가 손해를 볼까봐 걱정하는 대기업이 있다는 게 대전시민으로선 행복한 일이다. 현대의 지극한 대전 사랑 아닌가?

그러나 현대백화점 측 말을 그대로 믿을 순 없다. 현대 보도자료의 주장이 무엇이든 그 목적이 대전시와 시민들보다는 현대 자신을 위한 자료임은 의심할 바 없다. 아웃렛 사업이 아무리 대전시와 시민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도 현대 측 자신에 손해라면 조용히 사업을 접었을 것이다. ‘으름장 보도자료’는 아웃렛 사업이 대전시와 시민들에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는 불분명하더라도 현대 자신에겐 이익이 된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시는 현대의 압박에 굴복하듯 바로 반응이 나왔다. 시는 16일 “현대가 제출한 대덕테크노밸리 용산동 관광휴양시설용지 세부개발계획 제안서에 대한 행정절차를 진행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수용의 뜻으로 보인다. 아무리 대기업의 힘이 세더라도 무슨 행정이 이런 식으로 처리되는지 알 수가 없다.

처리가 곤란한 민원도 이렇게 현대처럼 압박하면 해주는 게 대전시 행정인가? 대전시는 현대의 압박 이전에 먼저 이 사업의 내용을 공개하고 시민과 시민단체 등의 공론을 거쳐 결정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마치 떠밀려서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정말 대기업에 떠밀려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대기업과 짜고 치는 것인가?

현대가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이 사업에선 갑이 아니라 을이다. 그런데도 허가 기관인 대전시장과 대전시를 협박하는 듯한 자료를 내고, 시가 곧바로 화답하는 모습은 행정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이 사업이 어떻게 결론나든 시민들의 의문을 쉽게 풀리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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