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창수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사무총장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수립 이후 9명의 대통령(윤보선, 최규하는 제외)이 있었다. 이중 2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쫓겨났다. 1명은 재임 중 피살됐고, 1명은 퇴임 후 자살했다. 2명은 감옥을 갔고, 나머지 3명은 친자식이나 친인척이 감옥에 다녀왔다.

대통령 9명 가운데 예외 없이 유고(有故)였다. “이러려고 뽑았나”하는 국민적 자탄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머지않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오는5월9일 대선을 치러야 하고 이튿날 제19대 대통령의 5년 임기가 시작된다.

김창수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사무총장
그리고 새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박근혜 내각’과 시한부 동거에 들어간다. 정말 유례가 없던 가보지 않은 길이다. 이정표도 나침반도 제대로 없다. 단지 이번만은 후회 없는 ‘훌륭한 대통령’을 뽑겠다는 환상(?)을 안고서 말이다.

그러나 최종 레이스에서 그 누가 당선되든 ‘청와대의 저주’를 피할 길은 없을 것 같다. 최근 반성적으로 수없이 지적되고 있듯이 제왕적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공식처럼 되풀이되는 승자의 저주를 막을 수는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헌법 개정 당위성이나 국민적 공감대 확인

그렇다면 대선 일까지 불과 50일 채 남겨두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결국 개헌 밖에 답이 없다. 그러나 길은 너무 서둘러도, 너무 늦추어도 안 된다. 헌법개정의 당위성이나 국민적 공감대는 여러 차례 확인되었고 현재 국회에 개헌특위가 설치돼 전면 개정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국민참여형 개헌을 위해 국민공모방식으로 선정된 50여명의 자문위원회가 각 분과별로 참여해 조문화작업까지 해나가고 있다.
 
문제는 대선전 개헌이 가능한가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3당 원내대표가 개헌합의안을 조속히 만들어 이번 대선때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나섰다가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유력 대선주자들의 반발을 사는 바람에 분란만 키웠다. 개헌특위가 아직 기초안조차 만들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조급하게 서두른 것은 정략적이라는 비난이다. 백번 들어도 싸다.

하지만 국민적 합의 등등을 이유로 개헌을 내년 6월의 지방선거로 늦추자는 주장도 역시 정략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명분은 그럴싸해 보이나 결과적으로 개헌시기를 1년 이상 늦추자는 것으로 현재 시제로서는 개헌반대, 즉 ‘호헌’이나 다름없다. 한편으로 지금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개헌특위의 활동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말이 국민적 공론화이지 구체적인 개헌안이 나와야 국민적 관심을 끌 수 있고, 공청회나 토론회도 활발히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헌법에 국회 개헌안발의 후 20일의 이상의 공고기간을 두고 국회통과까지 60일의 여유를 두는 것도 다 이를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는가?

시중에는 유력한 대선주자들이 개헌에 반대하는 것은 ‘다 차려놓은 밥상’을 뭐 하러 물리려고 하겠느냐는 이야기들이다. 결국 정치권은 표면적인 이유를  어떻게 들든 간에 저마다 대선게임의 유불리를 두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현재 국회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필자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개헌의 시기를 굳이 대선이나 지방선거와 연결 짓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시기를 한쪽에선 대선, 다른 한쪽에선 내년의 지방선거로 각기 주장하고 있다.

전국적인 선거 때 동시에 실시함으로써 국민적 편의나 비용절감의 부수적인 효과는 있겠으나 그러다보면 한쪽은 졸속으로, 다른 한쪽은 실기(失機)로 흐를 위험성이 크다. 개헌을 위한 별도의 국민투표를 실시할 경우 800억~1000억 가량의 예산이 든다는 게 중앙선관위의 추계인데, 이는 국가대계를 위한 ‘개헌비용’으로 충분히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국회 개헌특위 내에 기초위원회 조속히 구성해야

둘째, 이번 개헌작업을 전문과 총강서부터 헌법개정과 부칙조항에 이르기까지 총망라하는 전면개정의 욕심을 버리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권력구조문제에 한정하는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 ‘개헌환경’을 감안해 우선순위를 두자는 것이다. 권력구조나 정부형태를 위시해 지방분권, 국민발안과 국민소환권 등 직접민주주의 도입 등 촛불민심과 시대가 요구하는 굵직굵직한 핵심과제를 먼저 손질하자. 나머지 분야는 현재의 경성헌법에 대한 개정절차를 연성화해 차후로 넘기는 것도 방법이다.

셋째, ‘집중과 선택’을 위해 국회 개헌특위 내에 기초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초안을 만드는 게 급선무이다. 앞서 말했듯 개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끌고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선 ‘물건’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품평도 하고 찬반토론도 활발히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넷째, 국회는 개헌의 실행을 확실히 담보하기 위해 최소한 대선전에 국회발의단계 수준으로 개헌안을 확정지어야 한다. 그런 다음 이를 국회차원에서 대선후보들과 함께 국민 앞에 서약하고 구체적인 개헌시간표를 제시하는 국민적 공증절차를 밟아 두는 게 좋을 것이다.

이래야만 개헌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한편 차기정부에서도 소모적인 개헌논란에서 벗어나 본연의 개혁과제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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