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가 어눌하게 말했다.

“송구스럽다니 우리는 동문수학한 친구사이가 아닌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하시게. 그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일이 성사될 수 있도록 하겠네. 그러니 어서 술이나 마심세.”

이사는 흔쾌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하고 후하게 대접해 주었다.

한비자는 이사의 호의에 감사했다. 역시 동문수학한 이사가 진짜 친구라고 굳게 믿었다.

며칠이 지났다. 이사는 약속한 대로 한비자가 진왕을 알현토록 주선했다.

진왕은 뜻 밖에 한비자의 방문을 받고 크게 환영하며 그를 맞았다. 어눌하게 조당에 들어오는 한바자를 보자 용상에서 내려와 그를 환대했다.

“꿈에도 그리던 선생을 만나니 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어떤 가르침도 좋으니 말씀을 들려주시오.”

진왕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이런 언동을 지켜보던 중신들은 숨을 죽였다. 한비자는 조용히 진왕에게 예를 올리고 제자리에 앉았다. 그의 행동은 수도승처럼 단아하고 간결했다. 한비자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조금은 답답한 시각이 머물렀다.

“한나라 임금께서는 진나라에 땅을 떼어서 바치고 아울러 진나라 동쪽 속국이 되길 희망하고 있사옵니다.”

한비자가 아주 천천히 더듬거리며 말했다. 조당의 중신들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오. 한나라가 과인의 속국이 되겠다고 자청한 것도 기쁜 소식이오 만 선생이 그런 소식을 가져온 것은 더욱 기쁜 소식이외다.”

진왕은 한비자의 손을 덥석 잡고 말을 이었다.

“그것 보다 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치 못하고 있다고 보시오?”

진왕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천하통일의 대업뿐이었다. 특히나 한비자와 같은 현자가가 제 발로 걸어 왔으니 그의 고견을 잠시라도 빨리 듣고 싶었다.

한비자는 얼굴을 실룩거리며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법을 바로 세워 부강해진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치 못하는 것은 치국하는 방법에 미진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법한 이야기였다. 진왕은 더듬말에 귀를 기울이며 다시 물었다.

“그 미진함이 무엇이오?”

진왕과 한비자는 담소를 계속했다.

“간신을 물리고 어진 신하를 보다 많이 기용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간신은 어떤 사람이란 말이요?”

진왕의 조바심이 침을 마르게 했다. 하지만 한비자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아주 천천히.

“신하는 군주의 눈과 귀를 막아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하가 국가의 재정을 좌우해서는 안 됩니다. 군주의 승인을 받지 않고 신하가 마음대로 명령을 내려서는 안 되며 신하가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어서도 안 됩니다. 군주는 신하가 파당을 결성하는 폐단을 차단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