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적으로 신하된 도리와 간신의 범주를 일렀다.

“그렇다면 군주는 어떻게 해야 하오?”

진왕은 한비자가 지독한 말더듬으로 지루할 만큼 더듬거렸지만 귀를 기울이고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반면 주변의 신하들은 시기하는 눈초리로 왕과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더듬거리는 말투며 어눌한 표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얄밉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밤이 늦도록 계속됐다.

“군주는 자기의 재능과 힘을 표면에 나타내지 말아야 합니다. 좋아하고 미워하는 바를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군주는 스스로 국사를 행하지 않고 신하로 하여금 살피게 하며 스스로 생각하거나 계획하지 않고 신하로 하여금 실행토록 하여 그 결과로 나타나는 공과 허물을 간파해야 합니다.”
진왕은 크게 흡족하였다. 때로 무릎을 치고 혹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대신들은 못내 속이 상했다. 자신들보다 더욱 높이 평가 받는 한비자가 못마땅했다. 시기와 질투가 뒤엉킨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신에게 천하를 통일할 비책이 있사온데 써보시지 않겠사옵니까? 그것을 쓰시고도 천하를 통일하지 못한다면 신을 죽여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한비자가 말했다. 가상한 말이었다. 통일제국의 위업을 위한 비책을 지니고 있다니 듣던 중 반가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진왕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과인이 어찌 선생의 비책을 마다하겠소. 오늘은 밤이 늦었으니 객관에 나가 편히 쉬시오. 그리고 비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단둘이 나누고 싶소. 과인을 찾아주어 감사하오.”

한비자는 진왕에게 삼배를 올리고 자리를 물렸다.

진왕은 그가 물러가는 동안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큰 일꾼이 넝쿨 채 굴러 들어왔다고 여겼다. 그를 얻는다면 천하를 얻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생각했다.

한비자도 다를 것이 없었다. 한나라에서 뜻을 펴지 못하다 이제야 진나라에 와서 영웅을 만나 뜻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하며 가벼운 걸음으로 객관에 물러났다.

며칠 뒤 진왕은 조당에 중신들을 불러놓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한비자는 참으로 비범한 인물이오. 그대들도 들었질 않소. 과인은 간밤에 한잠도 이루지 못했소. 한비자의 명쾌한 논리를 곱씹어보았지만 대단한 발상과 지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오. 해서 하는 말 이오만 그를 중용하여 천하통일을 이룩하는데 동량으로 쓸까 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하지만 아무도 화답하지 않았다. 모두들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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