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14>
수도원은 3세기 중반 이집트에서 안토니우스(250~355경)가 가톨릭 교리를 보다 깊이 연구하기 위하여 기도와 금욕 등 세속의 유혹을 외면하며 은둔생활을 하는 공동체로 시작했는데, 4~7세기 비잔틴 제국시대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529년경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가 로마의 남동쪽 몬테카시노에 있던 아폴로신전을 부수고 세운 몬테카시노 수도원(Monte Cassino Abbey)이후 융성했던 수도원은 10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종교개혁과 이슬람을 믿는 오스만 튀르크의 침략을 받으면서 크게 쇠퇴했지만 아직 수도원이 융성하던 시기에 레오포드 2세가 베네딕트 수도원에 궁궐을 기증하자 수도사를 위한 학교로 사용하다가 1702년부터 20여 년 동안 개축 공사 후에는 순수한 수도원으로 변신했다.
현재 멜크 수도원은 오스트리아 전국의 23개 가톨릭 교구를 관리하는 한편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는데, 특히 오랫동안 수도사를 위한 학교 역할을 해온 탓에 고문헌과 고서적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유럽 최대의 바로크 양식의 멜크 수도원은 지금도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는 성당이어서 골목길을 지나 산 중턱의 수도원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수도원 정문 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이곳에서 곧바로 정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주차장에서는 수도원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파스텔 톤의 노란색과 주황색의 수도원 건물이 매우 세련되고 아름답다. 특히 흔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부분의 유적지들이 요란하게 표지석을 세우는 것과 달리 주차장에서 정문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벽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고 간략하게 페인트로 쓴 글씨가 눈길을 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황제의 계단(Imperial Staircase)’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2층이 황제가 머물던 궁전인 탓도 있지만 계단을 마치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것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그림으로 꾸민 나선형 계단이기 때문이다. 2층의 196m에 이르는 복도의 북쪽 벽에는 바벤베르크와 합스부르크, 즉 오스트리아를 다스렸던 역대 임금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남쪽은 모두 창문이어서 실내가 유난히 밝고 화려해 보인다. 게다가 복도의 천장은 쉔브론 궁전이나 베르사유 궁전의 천정처럼 돔형으로 만든 것도 황홀하다. 바벤베르크 왕조의 왕실이던 화랑과 박물관의 천정은 프레스코(Fresco painting)로 장식되었는데, 프레스코 기법이란 석고와 물감을 혼합하여 색깔이 골고루 혼합 됨으로써 색갈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당시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화랑에는 가톨릭의 권력이 강력했던 중세의 시대상이 담긴 그림과 조각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멜크 수도원이 오랫동안 수도사를 양성하는 학교로 사용했던 탓에 9세기 초반에 쓰였다는 설교 집을 비롯하여 10세기에 작성한 1800권의 필사본 등 10만여 권의 장서들을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이 수도원의 자랑이다. 도서관의 방대한 수많은 장서들로 멜크 수도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고문헌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2층의 박물관과 도서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면 수도원의 뒤편이다. 이곳에서는 멜크 마을과 멜크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서 마치 전망대 같다. 멜크 마을은 유럽의 중세도시가 그러하듯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가 있는 광장을 비롯해서 마차가 다니던 좁은 골목에 말을 대신한 소형차들이 앙증맞게 오가고 있으며, 시민들은 노천카페에서 와인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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