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38>

1년 이상 장기 파행을 빚어온 대전예지중고등학교 사태가 임시이사진 구성으로 회생의 돌파구를 마련하게 됐다. 학교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교사와 학생들이 추천한 임시이사들로 이사진이 꾸려졌으며 지난 일요일 첫 이사회에서 새로운 이사장도 추대했다.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도 재단과의 갈등으로 복직이 미뤄졌던 교감도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긴 시간 교육청과 법원, 이사들이 사는 전라도 집까지 항의 방문하는가 하면 수업거부와 삭발, 천막수업 등 갖은 고초를 겪은 만학도들도 이제는 평정심을 찾아가고 있다. 일단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임시이사진이 구성됐으니 더 이상 시위를 안 해도 될 것 같다. 예지중고가 만학도들의 꿈의 배움터로서 제 기능을 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상화의 수순을 밟고 있으니 다행이다.

지난해 8월부터 중단된 대전시교육청의 보조금이 다시 지급돼 반년 이상 밀린 교사들의 월급을 해결하고 학교 행정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게 시급하다. 급여를 못 받는 속에서도 학생들의 대학입시와 수업시수를 맞추기 위해 땡볕 아래서 천막수업을 진행하던 교사들도 이제는 번듯한 교실에서 수업을 하면 좋겠고 어르신 학생들도 그만 시위를 멈추고 편안하게 공부하기 바란다.

A씨 유족들 "진상규명위원회 구성해 법적 책임 물을 것"

그런데 예지중고 사태의 당사자로 지목됐던 전 교장 겸 이사장 A씨가 주검으로 발견되자 학교 안팎이 또 한 차례 술렁이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 A씨는 1년 이상 지속된 학사파행과 재판 등으로 심적 고통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숨지기 하루 전 임시이사진이 구성되는 것을 보며 크게 낙담했으며 진행 중인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재정적 어려움도 많았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A씨가 재단과 가족, 교육감에게 남겼다는 유서를 놓고도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오랜 시간 학교 구성원들과 갈등을 겪으며 교육청에 대한 원망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A씨 사망 전날 그를 만났다는 학교의 한 관계자는 "학교가 파행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했으며 교사와 학생들이 요구하는 대로 임시이사회가 꾸려지는 것을 보며 체념한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A씨의 퇴진을 요구했던 교사와 학생들도 충격에 빠졌다.

A씨 유족들은 "억울하다"며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지난해 예지사태의 시작부터 임시이사회 구성까지의 과정을 파헤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재단과 설동호 교육감 앞으로 남겼다는 A씨의 유서도 다음 주 월요일 설 교육감과의 면담이후 공개하겠다고 한다. 유족들은 A씨의 발인 날 교육청과 시의회를 찾아 설 교육감에게는 "고인이 한(恨)을 품고 갔다"고 했고 황인호·정기현 시의원에게는 "용서 못 한다"며 울분을 토했다.

교사와 학생들로 구성된 정상화추진위원회에 대한 유족들의 원망도 큰 것 같다. A씨의 미망인은 “교사들의 급여를 체불한 것도, 공금을 횡령한 것도 아닌데 비리 재단 이사장이라는 누명을 쓰고 쫓겨나야만 했다”며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 교장실에 빈소도 못 차리게 했다”고 한탄했다. 한 때는 교장과 교사, 학생으로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인데 갈등의 골이 이렇게나 깊은지 답답하고 안타깝다.

예지중고가 만학도들의 배움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서둘러 갈등부터 털어내야 한다. 소송과 고소고발 등으로 상처 입은 마음들을 서로 보듬어줌으로써 학교로서의 기능을 속히 회복해야 할 것이다.
재단, 교사, 학생들 갈등 털고 학교 정상화에 힘 모아야

지금 예지중고의 가장 큰 문제는 내편 네 편으로 나뉘었다는 점이다. 교사도, 학생도 재단이냐 정상화추진위원회냐로 편을 갈라 나와 다른 편이면 배타적이다. 학교 특성상 교사보다 나이 많은 학생들이 많은 가운데 나와 의견을 달리하면 교사든 학생이든 공격하고 질시한다. 우리 편이었다가 상대 쪽과 가까워지면 배신자로 낙인찍어 반목하고 경계한다. 20여명의 교사와 500여 학생들이 1년 이상 시련을 겪다보니 마음마저 황폐해진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지난해 여름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서 교육청 앞에 모여 앉아 "학교를 살려 달라"던 만학도들은 혹여 지쳐 쓰러질까봐 사탕 한 개도 상대방 입에 넣어주는 모습이었다. 학교가 정상화돼 제발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던 어르신들이었다. 평생을 일터에서, 가정에서 가족과 형제를 위해 희생하다 이제라도 못 배운 한을 풀고자 예지의 문을 두드린 사람들이다. 네 편, 내 편으로 갈등하는 건 그들답지 않다.

예지중고가 만학도들의 배움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서둘러 갈등부터 털어내야 한다. 소송과 고소고발 등으로 상처 입은 마음들을 서로 보듬어줌으로써 학교로서의 기능을 속히 회복해야 할 것이다. 법적·행정적 문제들은 교육청과 의회, 새로운 이사들에게 맡기고 교사와 학생들은 교실로 돌아가는 게 맞다. A씨도 유서에서 상생을 주문했다니 서로에 대한 원망보다는 학교를 살려내는데 힘을 모으기 바란다. 그것이 학교정상화에 힘을 실어준 지역민들에 대한 보답이자 예지중고가 유지되는 길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