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쪽에 한비자를 두고 다른 쪽에 이사를 둔다면 천하에 다시없는 진용이 갖추어질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를 죽이지 않고 운양 옥에 가두도록 명했던 것이다. 조정의 여론이 잠잠해지면 필히 그를 중용하여 천하통일을 이룩하는데 큰 재목으로 활용할 요량이었다.

한쪽 팔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진왕은 곧이어 한나라를 치도록 명했다. 한비자가 없는 한나라는 진왕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한편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한나라 왕은 한비자를 사신으로 보냈으니 진나라의 침략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비자가 사신으로 간 뒤 진나라의 침략기운이 다소 누그러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일같이 접경지역에서 급박하게 올라오던 보고도 뜸해졌다. 진나라가 전쟁준비에 분주하다는 파발도 오지 않았다.

한 왕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오랜만에 궁녀를 옆에 끼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맞은편에는 승상이 대작하고 있었다.

“역시 한비자는 인물이야. 내 그를 일찍 중용치 않은 것이 후회 되는구나.”

그러자 승상이 말했다.

“대왕마마. 후회를 거두시옵소서. 한비자는 지독하게 말을 더듬어 누구도 그와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지 안사옵나이다. 그런 사람을 어찌 중용치 않았다고 후회 하시오니까? 한나라에는 그보다 더 출중한 인물이 넘쳐나질 않사옵니까?”

승상은 이미 진나라의 돈약에게 매수되어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고 있었다.

그는 한왕에게 진나라와 화친을 맺고 군사를 육성치 않는 것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해 왔던 터였다. 그러기에 한비자와는 의견이 상반되는 입장에 있었다.

“그래? 그도 맞는 소리요.”

술을 따르고 있던 궁녀가 간교를 떨며 말을 보탰다.

“승상의 말씀이 옳사옵나이다. 한비자는 융통성이 없는 인간이옵나이다. 궁에서도 그를 멋이 없는 인간이라고 입길 한답니다. 대왕마마.”

“오, 그래? 그리들 한비자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한단 말인가?”

“대왕마마. 오늘은 오랜만에 음주기회를 만드셨으니 즐겁게 마시는 것이 좋을 듯 하옵나이다. 풍악도 울리시구요.”

승상이 박자를 맞추었다. 그러자 한 왕은 더욱 취기를 풍기며 풍악을 울리도록 명했다. 그러자 궁중악사들이 들어와 저만치에서 흥겹게 풍악을 울렸고 무희들이 춤을 추었다.

술에 흠뻑 취한 한 왕은 승상이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나비처럼 얇은 비단 천을 허공에 날리던 무희에게 승상의 수발을 들라고 명했다.

“아니되옵니다. 대왕마마. 어찌 신하가 임금의 식솔을 품는단 말이오니까?”

“아니오 승상. 오늘만큼은 내 윤허하겠소. 함께 어울리며 놀아봅시다. 내 승상의 업음질을 보고 싶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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