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도전이 어느 때보다 많았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홍준표 경남지사 등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자치단체장까지 6명의 ‘지방권력’이 대권 레이스에 나서 경쟁을 벌였다. 홍준표 경남지사만 빼고는 예선전에서 탈락했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란 자리가 대권 도전의 한 수단이 될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그동안은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 정도만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런 인식이 이번에 많이 깨졌다. 전국의 모든 시도지사는 물론이고 기초단체장까지 정치적 능력에 따라 곧바로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전례를 만들었다. 아직 성공 사례까지 나오지 않았으나 지방권력을 통해 대권으로 갈 수도 있다는 인식은 커지게 되었다.
 
’지방’ 기존의 중앙권력조차 대권을 노리는 발판이 되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하방(下放) 성과를 갖고 천하대란의 현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했다. 중국 당정간부의 관료화 방지를 명분으로 지방이나 공장 일터에서 일정 기간 생활하는 것이 하방이다. 마오쩌둥 때 도입됐으나 시진핑 시대에도 이어오고 있다. 한 지방의 토굴에서 생활했다는 시진핑의 하방시절 스토리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안희정 홍준표 원희룡 남경필처럼 몸은 지방에 두면서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많아지면 지방의 입장선 일단 좋은 현상이다. 지방에서 일하던 사람이 곧바로 중앙의 일을 맡는 경우가 예삿일이 되면 지방분권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대권주자 자신도 지방 행정경험이 국가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시도지사 자리를 집권을 위한 수단으로만 접근하면 지방은 오히려 피해만 볼 수 있다. 홍준표 후보는 도지사직을 내놓으면서 사퇴 날짜를 일부러 늦춰 보궐선거를 치를 수 없도록 꼼수를 썼다. 선거비용 절약을 이유로 대고 있지만 자신이 내놓은 도지사 자리를 상대에게 넘겨줄 걱정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중도사퇴로 상대 당에게 자리를 넘겨줬던 오세훈 서울시장 김두관 경남지사의 전례를 막기 위한 술수다. 

도지사 자리가 도민이 아니라 ‘하방 정치 놀음 하는 자’의 것이 되었다. 홍 후보는 ‘하방’을 통해 대권 도전의 기회를 얻었으면서도 그 지방을 볼모로 잡은 셈이다. 인구 200~300만 명의 살림을 이끄는 시도지사는 1년씩이나 자리를 비워둘 수 없는 자리다. 잔여 임기가 1년이 넘게 남았다면 당연히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선거비용이 적지 않다고 해도 도지사 공석으로 생기는 피해와는 비교할 수 없다.
 
대권에 도전하는 유능한 정치인들은 지방에서도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그러나 애초부터 지방을 대권 도전의 수단으로 보면서 도청이나 시청을 선거캠프처럼 활용한다면 지방엔 도움이 아니라 피해만 준다. 이렇다 할 실적도 없이 지방에서 월급 받고 측근들 수십 명씩 뽑아 챙겨주면서 1년 내내 청와대만 바라보는 ‘하방 정치’는 지방을 죽이는 비양심의 정치다. 그런 정치인들이 많아질까 걱정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