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단편소설] 2.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나는 왜 혼자일까, 이광희 作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서로의 아픔이라고 생각하여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냥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족했다. 회의소집을 해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근황을 묻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냥 회의가 끝나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곳에서 놀고 쉬고 잠자고 혼자 이야기 했다. 그러다 이날 아침회의에서 아야기가 터진 것이다.
그것은 물론 동장님의 꿈처럼 하늘에서 이 두터운 어둠을 뚫고 무언가가 내려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영언이가 돌아서며 입을 열었다. 이참에 무슨 말이든 듣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동장님. 아니 선생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동장님을 향해 다시 물었다. 그는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무슨 큰일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좌불안석이었다. 괜한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갑자기 환경이 바뀌었을 뿐이야.”
서있던 또치쌤이 영언이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그래도 선생님은 알고 계시잖아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언이는 또치쌤의 손을 뿌리치며 동장님을 향해 물었다.
“글쎄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다시 또치쌤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영언이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이도 있었지만 모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그날 일을 되새김질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것도 영언이가 처음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 동장이었으므로 그에게 묻고 있었다. 
“그런데 왜 다른 아이들은 아무도 없어요?”
“..........”
“왜 우리만 남아 있어요?”

영언이의 질문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동장님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동장님께 자꾸 묻지 마.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시잖아. 그냥 우리는 이곳에 있고 다른 사람들은 어딘가에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 편해. 왜 자꾸 우리만 이곳에 있느냐고 동장님을 다그치면 어쩌란 말이냐. 동장님이 우리를 이곳에 있도록 한 것은 아니잖아.”

팽목항의 소망, 이광희 作

각지게 머리를 깎은 또치쌤이 조금은 화가 난 얼굴로 영언이를 나무랐다.

사실이 그러했다. 동장님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도 같은 신세였다. 다만 그는 이 마을에 오기 전 학교에서 학생부장 이었으므로 일이 벌어졌을 때 아이들에게 ‘각자 자신의 방에 들어가 꼼짝하지 말고 있으라’고 소리친 것뿐이었다. 사태가 엄중했고 혹시 마을 밖으로 사람이 밀려나가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렇게 주문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 누군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마을 방송에서도 그렇게 말했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스피커를 통해 ‘조만간 구조대원들이 올 것이니 아무도 움직이지 마라. 절대 이동하지 마라.’라고 강하게 주문했었다.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던 양 선생님은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가 취한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남아있는 것은 그의 말을 제대로 들은 아이들뿐이었다. 물론 더 많은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동장님은 그것이 그를 괴롭혔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럴 수도 없었다. 고개만 떨어뜨리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더욱 무거웠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권씨 아저씨가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회관을 나갔다.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온지라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권씨 아저씨는 늘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 부자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늘 얼굴을 마주보고 웃고 이야기하고 또 웃었다. 말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만큼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둘이서 놀았다. 깔깔거리는 혁기의 웃음소리가 집에서 새어나오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아이를 기다리는 그들, 이광희 作
동장님이 가끔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럴 때마다 늘 웃고 있었다고 했다. 얼굴을 붉히거나 혼을 내키는 경우는 없었다. 재미없이 무미한 나날이었지만 그는 아들과 함께 늘 신이나 있었다. 그의 집이 밝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본래 제주도에서 귤농사를 짓기 위해 귀농하다 마을에 머물게 되었던 지라 마을 사람들과는 할 얘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 때문인지 전체가 모이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즐겨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늦게 왔다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권씨 아저씨가 자리를 비운 뒤 회의는 침묵으로 이어졌다. 답답한 분위기가 잠시 회관을 짓눌렀다. 그때 문이 열리며 다연이가 들어왔다. 얼굴이 부시시했다. 몸이 좋지 않다더니 얼굴에 쓰여 있었다.
“다연아 괜찮니?”
또치쌤이 환한 얼굴로 반기며 물었다.

“아직도 좋지는 않아요. 그래도 마을회의에 참석해야 할 것 같아서요.”
다연이는 권씨 아저씨가 비운자리에 앉았다.
“좀 더 쉬지 않고.”
영애 아주머니가 옆에 앉은 다연이를 보며 말했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이 딸 같은 마음에 늘 안쓰러워했다.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대하고 싶어했다. 

“아니에요. 이제 괜찮아졌어요.”
다연이는 목을 좌우로 풀며 앉았다. 목 부분이 뻐근했던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누워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동장님. 이제 회의는 그만하시고 오늘은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각자의 희망이나 바람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동장님 말씀대로 좋은 징조가 보였다면 정말 더 좋은 일이 있지 않겠어요?”
영애 아주머니가 가라앉은 회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제안했다.

사실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도 없었다. 또 관심도 없었다. 게다가 각자의 방에서 자신만 혼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이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다. 몇 차례의 회의가 있었지만 출석을 부르고 안부를 서로 점검하는 정도였다. 오랜 만에 만나기 때문에 더욱 할 말이 많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각자의 생각이 많다보니 할 말이 도리어 없었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어떻게 지냈느냐고 안부를 묻고 어디에 사느냐고 서로의 집을 파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금세 알았다. 만나면 아픔이 되살아나기에 도리어 만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냥 각자 생활하는 것이 편했다. 서로 방문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었다. 혼자 있으면 스스로를 볼 일이 없어 도리어 좋았던 것이다.

“그럼 제가 먼저 제 바람을 말할게요. 제 말이 끝나면 다른 사람이 말을 이어가도록 해요.”
영애 아주머니가 볼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좀 채 먼저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오늘 만큼은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답답한 속이 풀릴 것 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그동안 살기위해 아들과 떨어져 있었어요. 고단한 삶이었지만 성장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기위해 이를 앙다물고 살았지요. 그래서 이제는 제주도에 집도 한 칸 마련했답니다. 이번에 돌아가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살기로 했어요.”

아주머니는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훔쳤다.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손발이 부르트도록 살아온 날들이 꿈만 같았다. 오로지 아들과 함께 살겠다는 일념으로 그 고난을 물리칠 수 있었다. 호텔 청소를 하며 겪은 험한 일과 고단한 나날들. 돌이켜 보아도 힘겨웠다. 그래도 아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간다는 기분에 들떠있었다.

“이삿짐도 거의 다 옮겼어요. 이번이 마지막 짐이에요. 이 짐만 가져가면 이사는 마무리되는 거지요. 그러면 그 집에서 아들과 함께 살 거예요. 행복하게…….”
눈알이 발갛게 충혈 되었다. 속으로 참았지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는 정말 아들과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벌써 3년이나 됐어요. 죽는 그날까지 함께 살 거예요. 내게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이기에 함께 오래오래 살 거예요. 오래오래.......”

영애 아주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자잘하게 어깨를 떨었다. 모두 각자 다른 방향을 주시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서로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지만 함께 사는 마을 사람들이라 이해했다. 모두 그러려니 했다.
“너무 분위기가 가라앉아 제가 다음으로 이야기를 할게요.”
장난꾸러기 영언이가 힘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한마디로 이곳에서 미칠 지경입니다.”

미치겠다는 말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영언이를 쳐다봤다. 다소 저속한 표현이었지만 도리어 솔직한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다. 무슨 말이 나올지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 마을에 오기 전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방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있으려니 답답해서 죽을 것 같아요.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축구도하고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그러기에는 우리 마을이 너무 좁아요. 동장님. 이참에 마을을 좀 더 넓힐 수는 없나요. 축구장도 만들고 족구시합도 하구요.”

영언이의 말에 회의장이 빵 터졌다. 모두가 배꼽을 잡았다.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다함께 웃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질 몰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우리 엄마는 매일 공부하라고 말했지만 운동하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내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좋아하셨거든요. 솔직히 엄마가 좋아해서 더 뛰어다녔어요. 축구도 더 열심히 했고....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축구화도 사놓았을 텐데.......”

가슴에 묻은 축구화, 이광희 作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엄마 아빠와 친구처럼 살았어요. 제일 친한 친구가 엄마 아빠였는지도 몰라요. 아마 우리 엄마 아빠도 내가 가장 친한 친구일거예요. 아마도.”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졌다.
“이러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아무튼 나는 다시 엄마 아빠를 만나는 것이 소원 이예요. 다른 것 없어요. 엄마 아빠랑 오래 살 거예요. 우리 엄마 아빠도 그것을 간절히 바랄 거니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영언이가 팔을 머리위로 올려 하트모양을 만들었다. 이어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말을 했지만 뱉고 나니 더욱 엄마아빠가 보고 싶었다. 입을 실룩거리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함초롬히 앉아 있던 은희가 조용하게 말문을 열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참아야지요. 조금만 있으면 만날 거니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날까지 하루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은 없어요. 그래도 우리는 잘 참았잖아요. 조금만 더 참아요. 분명 우리에게 희망의 나팔소리가 들릴 거예요. 저는 확신하고 있어요.”

팽목항등대의 기다림, 이광희 作
은희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학문제 푸는 것을 좋아해요. 숫자가 정말 정겹거든요. 숫자는 거짓말이 없어요. 정답이 확실하잖아요. 어른들처럼 애매한 답을 주지 않아요. 어떤 면에서는 냉철할 만큼 명쾌하지요.

그래서 수학을 좋아해요. 제방 벽에 수학문제를 푼 자국이 빼곡한 것도 이 때문이예요. 저는 이다음에 사회에 나가면 회계담당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공무원이 되면 월급은 걱정이 없잖아요. 엄마를 도와줄 수도 있고...... 그리고 신나게 숫자를 다루며 살 수 있잖아요.”

은희의 얼굴빛이 밝아졌다.
“물론 대학도 가야지요. 엄마 아빠가 기대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 자랑스런 딸이 되고 싶어요.”

은희가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았다.은희의 방은 자신의 말처럼 많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마도 이 마을의 모든 책이 은희의 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책이 쌓인 여백에는 온통 낙서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심심풀이 낙서가 아니라 수학문제풀이였다. 은희는 벽에 수학문제를 풀고 그것을 되새김질했다. 키가 자라가는 모든 벽에 수학문제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잠자리와 신발이 놓이는 장소만 예외였다.

동장님이 그의 방을 처음 방문했을 때 놀라 뒤로 넘어지는 줄 알았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수학문제만 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수학 문제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숫자는 그에게 가장 좋은 노리개였고 친구였다.
“그래도 엄마 아빠만큼 좋아하지는 않아요.”
은희가 고개를 떨구며 말을 맺었다.

은희는 누군가와 하루종일 재잘거렸다. 아마 그것은 엄마일 것이라고 동장님은 생각했다. 문제를 풀면서, 책을 읽으면서, 작은 공간을 오가면서도 엄마와 재잘거렸다.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면 오늘 회의내용을 엄마와 재잘거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다리는 마음, 이광희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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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디트뉴스24 사장·소설가
이 단편소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9명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허구로 재구성했다.

개인적으로 미수습자 9명을 알지 못하지만 그 아픔을 그들의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정말 간절히, 간절히 9명 모두가 서로 손잡고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왔으면 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나이에 세월호를 타고 먼저간 조은화양, 허다윤양, 박영인군, 박현철군과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그리고 이영숙씨, 권재근씨와 그의 아들 혁규군에게 바친다.

이광희 소설가는 지난 1997년 구인환 선생과 윤병로 선생의 추천으로 천료되었으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붉은새> 상·하, <청동물고기> 1·2·3권, <소산등>, <문화재가 보여요>, <충청혼맥> 등이 있다. 현재는 본보에 연재소설 <진시황과 여>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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