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처음 과학고등학교를 방문하였을 때 받은 인상은 학교가 이럴 수도 있구나 싶은 것이었다. 잘 가꾸어진 녹색의 잔디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뛰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머리가 길었고 복장도 제멋대로였다. 재직 교사를 찾아간 곳은 교사 10여 명이 함께 사용하는 교무실이 아니었다. 교사 두 명이 하나의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차분한 연구실 분위기 속에서 학생과 상담하는 모습은 우리가 떠올리는 학교의 풍경이 아니었다.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머리가 길던데?”
“아~ 여기 학생들은 창의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머리나 복장을 대체로 자율적으로 유지하도록 합니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하는 자기 주도적 학습에 길들여 있어서 수업도 교사가 창의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어요. 인문교과에서는 다양한 토론식 수업도 가능하고요.”

재직 교사에게서 가르치는 자의 긍지와 즐거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일반고에서도 학생들의 창의적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너무 큰 차별을 두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월성 교육이 만든 과학고 영재 발굴 육성 결과는?

수월성 교육이란 개인의 소질과 적성을 이른 시기에 발견하고 계발하여 마음껏 발전시켜 나갈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개인마다 가진 능력과 소질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과학고와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가 만들어졌다.

과학고는 과학영재를 발굴해 국가 경쟁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1983년 경기과학고를 시작으로 다음 해에는 대전·광주·진주에 설립하였고, 이후 90년대에 들어서 20개 학교까지 늘어났다. 모든 과학고는 공립학교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공부하고 있다.

2003년 이후에는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라 설립한 과학영재고가 6개가 있어 과학 영재를 길러내기 위한 학교는 26개 학교에 이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설립 초창기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과학고는 지원자가 넘쳐 경쟁률이 10대 1을 넘기는 학교가 많다. 웬만한 중학교에서는 과학고 입학생을 배출하면 현수막을 내걸고 자랑할 정도로 입학이 어렵기도 하다.

그런데 과학영재를 발굴 육성한 결과는 어떠할까? 최초의 과학고 졸업자가 나온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에게는 과학과 관련하여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이 나라의 과학적 역량과 비례한다고 말하기는 곤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우수한 과학적 업적이나 발명이 별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까지 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가 들인 공력은 사실 작지 않았다. 과학고는 일반고에 비해 세 배나 더 들어가는 학교 운영비와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혜택이 주어졌다. 연관하여 과학기술대학과 대학원에 대한 입학 지원과 과학기술자에 대한 유학비용 제공 및 병역 혜택 등의 지원은 국가가 체육 영재들에게 들인 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적지만은 않다.

입시경쟁체제 과학영재를 과학자로 길러내는 데 걸림돌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수월성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우선 지금의 입시경쟁체제가 과학영재를 훌륭한 과학자로 길러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 것 같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한국과학기술원으로 진학하였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과학기술원 정원보다 과학고 학생 수가 많아지면서 일반 대학으로 더 많이 진학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창의적 사고와 입시경쟁은 결코 궁합이 맞지 않는다.

더욱이 과학고에 진학하기 위해 맞춤형 과외와 학원에 의지하는 입학생들이 많다. 사설학원 가운데 특목고 입시전문학원은 지금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과학영재인지를 판별하기 위한 다양한 검사 등을 시행하고 있다지만, 학부모들의 끝 모를 열정을 당해내기는 어렵다. 과학영재를 발견하는 과정이 훈련된 아이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전문학원들이 설치는 것이다.

사실 위대한 창의력을 발휘한 사람들은 대부분 일종의 아웃사이더였다. 계획적으로 길러진 것이 아니라 비범함을 스스로 찾으며 새로운 길을 걸어간 사람들이었다. 체육 인재들을 길러내듯이 선수촌에서 엄혹한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내는 것과 같은 방법이 과학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교육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특징은 능력의 우열, 심신의 장애 여부와 같은 특정 잣대로 아이들을 일찍 분리시키는 것이 수월성과 사회 통합에 모두 해롭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모든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더불어 학습하도록 함으로써 우수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고교는 완전히 평준화되어 있고 교실에서도 일등과 꼴찌가 없이 모두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학교가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교를 다양하게 나누기보다는 평준화 체제를 유지하면서 '학습의 다양화'를 추구한다. 핀란드에도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있지만 따로 학교를 세우는 방식이 아니고 학교 안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고 한다.

입시경쟁이 교육의 근본 체제로 볼 수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부모의 사회·경제적 위상에 따라 학생의 성적이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따라서 특목고 입학을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가 이루어져야 해서 결국 경제적으로 상위 계층에 속한 학생들이 유리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한때는 이들 중 일부가 의학계열로 가기 위한 방안으로 과학고에 입학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그래서 의대를 가기 위한 예비학교가 되었다는 비아냥을 듣게 되자, 이를 억제하기 위해 이제는 의학 계열 진학을 위한 학교 추천서를 작성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재를 두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청소년기에는 능력과 관심이 하나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다양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과기대 출신 연예인도, 정치인도 나타나는 것이다.

특목고 없애고 모든 학교에서 학생 개성과 창의성 키울 수 있어야

이제 외국어고와 자사고 등의 특목고를 없애겠다는 대선 공약도 나타났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도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과학고만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건지 없애자는 의견은 들려오지 않는다. 창의적 사고를 가진 학생들을 모아놓고 특별한 과정으로 훈련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유대인들이 과학계열 노벨상 수상에서 독보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이 특정한 학교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거쳐 나온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들은 교육에서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창의적 사고과정을 중시하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라 한다. 이제 특목고가 그 운명을 다할 때가 왔다. 특목고를 없애고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이 개성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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