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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부르크 황금지붕

[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16>

정승열2017.04.14 11:24:31

1278년 합스부르크가의 속령이 된 인스부르크는 1485년 티롤 계의 프레데릭 3세(Frederick III: 1415~1494, 재위 1440~1494)가 알브레히트 2세로부터 왕권을 인수하여 오스트리아를 지배하게 되면서 비엔나에 있던 수도를 옮겨온 이후 신성 로마제국의 수도를 겸하게  되었는데, 인스부르크에는 프레데릭 3세 사후 아들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1459~1519, 재위 1493~1519)가 살았던 호프부르크 궁전(Hofburg)이 있다(합스부르크가에 관하여는 2017, 04.07. 인스부르크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참조).

▲정승열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장

인스부르크에서 가장 번화한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가 끝나고 좁은 헤르초크 프리드리히 거리가 시작되는 지점부터가 합스부르크가의 유적이 있는 구시가지(Altstadt)인데, 구시가지에는 600년 이상 유럽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발자취가 곳곳에 많이 남아있어서 인스부르크를 ‘알프스의 장미’라고도 한다.

라우벤이라고 불리는 천장이 낮은 고딕식의 아케이드와 함께 중세도시의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도로에는 성당․ 음식점․호텔 등이 많지만, 750~1000년 이상 된 호텔들은 크기나 설비가 아니라 오랜 역사와 함께 호텔에서 묵고 간 저명인사들의 이름과 숙박하고 간 기록을 마치 음식점 메뉴처럼 호텔 입구에 자세히 적어서 선전하고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구시가지 가게 상표

이것은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씨엠립에 인기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들렸다고 하는 카페 ‘레드 피아노(Red Piano)’가 젊은이들에게 인기 코스가 되어서 붐비는 것과 같은데, 또 골목의 미장원이나 옷가게 술집․ 여관이나 호텔 같은 점포마다 입구에 파마머리나 옷․ 술잔 등을 특징 있게 철제로 만든 간판이 보도 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이것은 문맹자가 많았던 당시에 행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실물이나 모습으로 광고물로 만들어 붙인 것인데, 반드시 인스부르크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좁은 골목길 양편에 붙어있는 간판들이어서 더 인상적이었다.

▲호텔의 명사 명단

레오폴드 1세(Leopold I: 1640~1705, 재위 1658~1705)는 1696년 터키군의 침략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비엔나의 쉔브론 궁전을 복원했는데, 1696년부터 1702년까지 6년 동안 복원한 쉔브론 궁전은 당시 유럽 여러 나라의 군주들이 가장 부러워하던 파리 베르사유 궁전처럼 대대적으로 개축해서 합스부르크가의 여름궁전으로 삼고, 인스부르크의 호프부르크 궁전은 겨울 궁전으로 삼았다.(비엔나 쉔브론 궁전에 관하여는 2017.03.24. 참조)

호프부르크 궁의 입장료는 입장료 8유로인데, 아무리 합스부르크가의 초기 궁전이라고 하더라도 유럽을 지배하던 왕가의 궁전치고는 매우 협소하다. 1층 홀에는 마리아 테리지아와 16명이나 되는 자녀들의 초상화를 벽면에 가득 전시되어 있고, 2층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아들 요세프 2세를 결혼시킬 때 로코코 식으로 새롭게 단장해서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서 오늘날 로코코 양식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황금지붕

프레스코(Presco) 화란 유화(油畫)가 발달하기 전의 화법 중 하나로서 벽에 석회 칠을 한 뒤 석회가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려서 물감이 자연스럽게 벽에 스며들게 하는 기법인데, 밑그림을 세밀하게 그릴 수 없는 반면에 한번 그린 그림은 오랫동안 벽의 일부가 되어서 보존성이 뛰어나서 벽의 표면을 뜯어내지 않는 이상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하루에 그림을 그릴 분량을 정확히 알고 작업을 해야 하며, 한번 그린 그림을 수정하려면 벽면을 뜯어내고 다시 석회를 칠하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등 수정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으나, 중세의 대부분의 궁전이나 성당의 천정과 벽화는 프레스코화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3층 황금지붕과 문양

2층 실내에는 응접실․식탁․ 침실 등이 세련된 색조와 디자인으로 잘 보존되어 있으나, 내부의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막시밀리안 1세도 왕궁 옆의 왕실 예배당에 묻혀있다(막시밀리안 1세에 관하여는 2017.04.07. 인스부르크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참조)

하지만, 일반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호프부르크 궁과 붙어있는 궁전의 5층 발코니의 황금지붕(Goldenes Dachl)이다. 황금지붕은 막시밀리안 1세가 마리아 비앙카와 결혼식을 올리고 살았던 바로크 양식의 궁전이지만, 막시밀리안 1세가 재위하던 시기(1493~ 1519)는 조선 연산군(1494~1506)~ 중종(1506~1544)때인데, 1세기 전에 세웠던 경복궁을 생각해봐도 참으로 옹색하고 조잡하다.

▲막시밀리안 1세

대체로 유럽은 17~18세기 초인 중국의 명․청시대까지도 건축․회화․문화의 모든 면에서 뒤져서 중국에서 도자기와 차(茶) 등을 수입하다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비로소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지만, 유럽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가의 궁전의 발코니 지붕을 청동으로 만든 기왓장에 도금한 동판 2657개로 지붕을 올려서 화려함을 과시했다는 것은 자금성을 생각해보면 가소롭기 그지없다.

아무튼 황금지붕이 있는 궁전은 1996년부터 인스부르크에서 두 차례나 동계올림픽을 치른 올림픽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층은 막시밀리안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입장료는 4유로이다. 박물관의 내부도 호프부르크 궁전과 마찬가지로 로마와 바티칸에서 유행하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었지만,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들은 먼발치에서 5층 발코니의 지붕만 바라보고 돌아선다. 베란다 벽에는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하던 8영지의 문장(紋章)과 황제와 왕비 상을 조각해 놓았다.

▲궁전 로비 초상화

▲마리아 테레지아 가족

▲호프부르크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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