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세계 속으로] <17>

스위스는 알프스 산맥 중 동쪽으로 오스트리아, 서쪽에 프랑스, 남쪽은 이탈리아, 북쪽으로 독일과 접한 산악지대로서 남한의 면적 절반도 되지 않는 4만㎢(남한 98000㎢)에 800만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나라다. 국민의 65%가 게르만족이고 18%가 프랑스계인 스위스는 1860년부터 중립국을 표방하여 1․2차 대전 때에도 중립을 유지했으며, EU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 가장 서쪽으로 돌출되어 도시의 삼면이 프랑스에 둘러싸인 도시 제네바(Jeneva)는 불과 20만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취리히․ 바젤에 이어 스위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서  일찍부터 지리적 이점으로 교통의 중심지이자 유럽의 금융 중심지가 되었다. 또, 중립국인 덕택에 제네바에만 UN 유럽본부(Palais des Nations)를 비롯하여 WHO, 국제적십자사, ILO,국제지적재산권기구(WIPO), 국제통신연합, 유럽핵연구소, UNICEF,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 :UN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등 22개 유엔 산하기구와 250개 이상의 NGO가 있다.

이런 수치는 뉴욕 다음으로 국제기구가 많은 국제도시로서 주민 중 외국인이 40%가 넘고, 항공노선과 기차가 잘 연결되어 있다. 런던과 로마와 1시간 30분, 프랑크푸르트에서 1시간 10분,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40분이면 갈 수 있지만, 우리나라와는 아직 직항노선이 없다. 또, 프랑스 영향을 많이 받아서 프랑스출신 칼뱅(Jean Calvin: 1509~ 1564) 등의 종교개혁으로 최초로 개신교국가가 되었으며,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고향이기도 하다.

유럽이 통합되기 전에 인터라켄에서 루체른을 거쳐 제네바를 여행했다가 EU가 통합 된 이후에는 파리에서 남하하면서 다시 찾은 제네바는 스위스가 EU 회원국이 아니라고 국경에서 간단하게나마 입국수속을 거쳤으며, 유로화가 통용되지 않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제네바의 신․구 시가지를 나누는 론 강 왼편에는 커다란 레만 호수가 있는데, 호수의 남쪽 마을들은 프랑스 영토이고, 호수의 북단 마을은 스위스 영토에 속한다. 제네바란 ‘물의 입’이란 의미라고 하는데, 시내 어느 곳에서도 바라보이는 레만 호수는 알프스 계곡에서 흘러내린 빙하수가 모인 곳으로서 수심 310m, 넓이 58000ha에 이르는 큰 호수다.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 100~BC 54)가 "갈리아 전기"에서 처음으로 레마누스 호수를 언급했을 만큼 오래된 도시여서 아마도 그 시기부터 레만 호가 있었던 것 같은데, 로마시대에는 레마누스 호(Lacus Lemannus)라고 불렀던 호수를 18세기 이후 프랑스에서는 레만 호(Lac Léman), 영어와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제네바 호(Lake Geneva)라고 부르고 있다. 레만 호에서의 명물은 아파트 40층 높이에 해당하는 140m까지 치솟는 제트 분수(Jet d'Eau)는 제네바의 상징이자 스위스 인들의 정밀 기계기술을 자랑하는 본보기로서 1360마력의 모터 2대가 초당 500리터의 물을 200㎞/h의 속도로 뽑아낸다고 한다.

제네바는 론 강(Rhöne)을 기준으로 북쪽 신시가지와 남쪽 구시가지로 나뉘며, 신시가지에 수많은 국제기구가 있고, 구시가지에는 옛 건물들이 있다. 또, 제네바에는 레만 호 부근의 국내선 열차 오비브역(Eaux-Vives)이 있고, 신시가지에 국제선 열차인 코르나뱅역(Garede Cornavin)이 있는데, 스위스 영토인데도 코르나뱅역에는 프랑스 철도안내소(SNCF)와 스위스 국철 안내소(CFF)가 따로 있을 만큼 프랑스 영향이 많아서 간혹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사실 제네바 시내는 매우 좁아서 도보로 얼마든지 시내 관광을 할 수 있지만, 제네바공항이나 코르나뱅역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가 있다. 또, 기차역이나 공항에서는 시민은 물론 여행객이 신분증(여권)을 제시하고 보증금 20스위스 프랑을 내면 4시간 동안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는 대여소가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4시간이면 제네바 시내를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자전거를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게 된다.

참고로 자전거는 에너지 절약과 대기 오염 감소가 목적이지만, 우리나라는 자전거도로에 대한 기본인식이 차도를 줄이지 않는 범위에서만 해결하려고 하여 인도의 한 부분에 선을 긋고 자전거도로라고 하는 실정이어서 자전거 운전자나 보행자에게 모두 불편하다. 그나마 전봇대나 하수도 맨홀 등이 있으면 자전거도로가 끊겨서 실용성이 없자 대부분 주말 레저용으로 하천변이나 공원을 달리는 정도인데, 유럽의 많은 도시 특히 제네바에서는 자전거도로가 아주 잘 발달되었다.

자전거도로를 인도와 차도 사이에 따로 설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도로에도 중앙분리대를 만들어서 자전거운전자가 안심하고 교행할 수 있다. 또, 자전거도로는 일반 차선과 다른 색깔로 표시했으며, 자전거도로를 만들 수 없는 비좁은 도로에서는 택시 등 대중교통과 함께 자전거가 통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자전거 운전자가 주체가 되는 자전거 도로의 확보와 기반조성이 되어야만 자전거 타기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르나뱅 역에서 5번 트램을 타고 UN유럽본부(Palais des Nation)정류장에서 하차하거나 4번과 8번의 경우 AV. Appia에서, 그리고 5,11번의 경우 Nations역에서 내리면, 커다란 ‘부러진 의자(Broken Chair Sculpture)’ 조형물이 있는 광장이 UN의 유럽본부다. 사실 제네바를 처음 방문할 때까지도 UN유럽본부라는 기구가 존재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는데, UN 유럽본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1937년 미 대통령 윌슨에 의해서 결성된 국제연맹 본부였다가 2차 대전 이후 국제연맹을 대체하는 UN이 창설되자 UN의 유럽본부로 개편된 것이다.

UN 유럽본부 광장의 부러진 의자는 대인지뢰로 다리를 잃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형물이라고 하는데, UN유럽본부는 주요회의가 없는 날에는 예약한 단체방문객들의 경우 가이드를 통해서 관람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일반인 8스위스 프랑, 학생은 6스위스 프랑이다.

안내는 프랑스어․독일어․ 이탈리아어․스페인어․ 영어로 해주며, 관람에 약 1시간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단체여행이 아니어서 입장하지는 못했다. 구내에는 세계 각국의 깃발이 걸려있고,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흰색 건물에는 1600여 개의 사무실과 34개의 회의실, 35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연간 7000여 건 이상의 국제회의가 열릴 만큼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다고 했다.

UN 유럽본부 왼편에 간디 동상이 있고, 그 옆 비탈길 위에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Inter- 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건물이 있는데, 국제적십자사는 1858년 신성 로마제국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와 프랑스․이탈리아 연합국이 제2차 이탈리아통일전쟁을 벌일 때 제네바 출신 앙리 듀낭(Henry Dunant)이 인도주의 입장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고 부상병의 치료를 주창한 이후 1863년 나이팅게일 등의 협조로 제네바에서 설립된 단체이다.

2차 세계대전 등 크고 작은 전쟁 때마다 인도주의적인 구호 활동을 하는 국제적십자사의 깃발은 스위스 국기의 붉은 바탕에 흰 십자가와 반대로 흰 바탕에 붉은 십자가인데, 1864년 전쟁포로에 대한 대우를 규정한 ‘제네바 협정’을 만들어 오늘날 국제적인 규범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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