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평소 가까운 여교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서로 잘 아는 다른 남교사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저께 뒤풀이 자리에서 A선생님이 어깨에 손을 얹어서 그만 내려놓으라고 했는데, 또 다시 그러기에 그러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주변 사람들이 민망해하고 본인도 당황했지요. 서로 잘 아는 처지에 그만한 정도에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저는 정말 화가 났어요. 친한 사이라도 그러면 안 된다고 봐요. 우리 여성들은 남성들의 터치가 기분이 나빠도 주변의 분위기를 고려해서 참는 거거든요.”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그러면서 과거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교사로 발령 났을 때의 경험을 말한다.
“임용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전체 교원 회식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대형 음식점의 큰 방 하나를 통째로 빌렸어요. 저녁 식사가 끝난 자리에 그대로 노래방 기계가 들어오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회자가 흥을 돋우기 위해 교사들을 불러내어 노래를 시켰지요. 새로 전입하거나 신규로 임용된 교사들을 먼저 불러내는데, 저는 안 나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춤추던 50대 교사 하나가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려 해서 완강히 거부했어요. 민망해 하며 물러가고 말았는데, 조금 지나고 와서는 같이 춤추자는 거예요. 화가 나서 무시하였는데, 뒤에서 저의 양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서 억지로 일으키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손이 제 가슴을 완전히 잡는 형국이 되었지요. 정말 화가 났어요. 그래서 그 옆에 있던 병을 들고 상에다 내리치면서 ‘그만 하세요!’ 라고 소리를 질렀지요. 그랬더니 슬금슬금 그 인간이 떠나고 분위기도 순식간에 얼어붙어서 회식도 대충 끝나고 말았지요.”

덕분에 그녀는 분위기 말아먹은 교사가 되고 말았는데, 당시 그런 추행을 당한 교사들이 더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그 50대 교사 같은 자들로 인해 그런 회식 자리가 너무 불편해서 가기 싫었지만 단합을 외치는 교장을 비롯한 선배교사들 때문에 억지로 앉아 있어야 했단다.
“회식할 때나 술자리에서 옆에 앉아서 슬그머니 살을 대어오거나 손을 얹거나 하는 따위로 추행하는 교사들이 아직도 있어요.”

학교 내 성폭력 예방교육 형식적 시간 때우기로 이뤄져

그런데 2015년 이후 교육부의 ‘학교 내 교원 성범죄 근절을 위한 고강도 대책’에 따라 무관용을 원칙으로 하여 중징계로 처벌하기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보았던 이런 따위 추잡한 행위들이 아직도 학교 현장에 남아있나 보다.
현재 교사 대상의 성폭력 예방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대부분 한 해에 한두 번 시간 때우기로 진행되고 있다. 그나마 교육이 주입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윤리적인 요구를 담는 교육은 주입식으로는 목적을 이루기가 어렵다. 다양한 사례를 찾아보고 문제점을 스스로 찾아보는 탐구적 과정이 있어야 한다. 교사들에 대한 교육이 이러할진대 학생들에 대한 교육도 시간 때우기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학교 내에서 학생 간 성폭력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2월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은 ‘학교 내 학생대상 성폭력 예방대책’을 발표하였다. 전국의 학생 4만3000여 명에 대한 학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 응답률은 초등(2.1%)⟩고등(1.9%)⟩중학교(1.4%) 순이었다고 한다. 적어도 학생 100명 가운데 2명 가까이가 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또 같은 학교, 같은 학년 학생에게 피해를 당한 비율이 대체로 70% 정도로 나타나 또래 학생 간 성폭력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초등학교부터 성교육 필수 교육과정에 포함돼야

최근에는 교사에 대한 학생의 성폭력도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등학교에서는 남학생들이 여교사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성적 희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들도 있다. 교사의 학생에 대한 성폭력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우월적 지위인 교사가 학생을 성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더 이상 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보고, 무관용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 모든 문제가 처벌에만 의존한다고 사라지기는 어렵고, 정작 필요한 것은 체계적인 성교육이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교육과정의 하나로 성교육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며, 중등에서도 양성 평등과 성폭력 예방을 포함한 실질적인 성교육이 교과교육으로 자리해야 한다. 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학생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활동 중심의 교육과정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 주체인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학생 상호간 서로를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성폭력은 성적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의 문제라고 한다. 교육 주체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문화가 학교에서의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가장 좋은 대책이다. 인간으로서 서로의 처지와 개성을 이해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가장 큰 존립 이유이다. 지식 전달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학교를 열어야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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