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비책이 무엇이오?”

“진왕은 반역을 꾀하고 우리나라로 도망쳐온 장수 번어기를 몹시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를 잡아오는 사람에게는 후한 상금을 내리겠다고 공포한 상태입니다. 이번에 그의 수급을 거두고 우리의 독항지역 지도를 가지고 진왕에게 간다면 그를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형가가 말했다. 하지만 태자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 할 수는 없소. 그는 내가 진나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나를 도운 사람이오. 그런 사람을 제물로 희생시킬 수는 없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시오.”

태자 단이 잘라 말했다.

“태자마마께옵서 그리도 단호하게 말씀하시니 다른 방도를 찾아보아야겠나이다. 며칠 뒤 비책이 마련되는 데로 다시 찾아뵙겠나이다.”

형가는 태자 단이 번어기를 배신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그리고 번어기를 찾아갔다.

번어기는 형가와 그리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태자와 함께 일면식이 있던 처지라 형가를 반겨 맞았다.

진나라의 자객이 올 것을 우려해 신분을 숨기고 숨어살던 번어기는 자신을 찾아준 형가의 발걸음에 감사하며 주안상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늦은 밤까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불을 밝혔다. 태자의 안위를 걱정하고 또 나라의 앞날을 우려하며 함께 잔을 부딪쳤다. 형가는 술을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도리어 더욱 또렷이 되살아났다.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되새기고 곱씹을 때마다 정신은 더욱 청명했다. 그래서 더욱 입이 열리지 않았다. 수급을 거두고 싶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진왕의 팽창 계략에 대해 비판했다. 그 대목에서 번어기는 흥분하여 열을 올리며 진왕을 성토했다.

“천하의 위선자. 쳐 죽일 놈. 통일을 볼모로 백성들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위선자가 바로 진왕이지요. 사악한 자의 피를 받고 태어나 진나라의 종묘를 더럽힌 추악한 왕이 바로 진왕이랍니다. 그의 팽창정책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우리 모두가 목숨을 걸고 막아야할 과업입니다.”

그는 침을 튀기며 분노했다.

그제야 형가는 자신이 번어기를 찾아온 연유에 대해 어렵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번어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몸이 진나라를 도망쳐 나온 후로 그곳에 남은 부모와 친족 모두가 진왕에게 죽임을 당했소. 치를 떨며 절치부심했던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소. 이제야 선생의 계책을 듣고 나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소이다.”

번어기는 술잔을 길게 들이켜고 북향 삼배를 올렸다. 그는 무슨 의식을 집전하는 사람처럼 아주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그동안 도피처를 만들어 주고 의리를 지켜준 태자 단에게 감사하며 하직인사를 고했다.

“태자마마 천세를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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