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권력과 방송은 공통점이 있다. 영향력이 막강하고 공공의 소유물을 빌려 쓴다는 점이다. 권력자는 정부라는 ‘국민 공동 소유물’의 관리를 임시로 부탁받은 사람이며, 방송은 전파(電波)라는 ‘국민의 공동 재산’을 빌려서 하는 언론사업이다. 둘이 같은 편일 때는 국민들을 어둡게 만들 수 있고, 원수일 때는 나라가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권력과 방송은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방송은 권력의 시녀에 가깝다. 권력은 공영방송 사장을 정할 수 있으며, 전파 관리권도 갖고 있다. 정부가 사장 임명권을 가진 KBS MBC는 물론 민영방송 SBS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SBS는 자본의 취약성 때문에도 권력에 약하다.

SBS는 문재인 후보와 관련된 1분 30초짜리 보도를 했다가 5분 30초나 되는 사과방송을 하고, 사장까지 나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 정도가 아니어도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었다. 대선 투표가 임박한 상황임을 감안해도 사과의 정도가 지나쳤다. 악의적 오보도 아니었을 것이다. SBS는 ‘뜨고 있는’ 권력에 의도된 오보를 내보낼 만한 용기가 없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나는 방송

언론사는 바람이 불 땐 버티고 바람이 멈추면 쉬어야 하는데, 바람이 불기 전에 눕고 멈추기 전에 일어나는 게 우리 방송이다. 박근혜 탄핵 촛불은, 켜지기 전에 방송이 켰어야 하고 켜진 뒤에는 뒤따라가도 되는데 촛불이 켜진 뒤에야 달려갔다. 뜨는 권력에는 알아서 기고, 지는 권력에는 먼저 나서서 밟는다.

우리나라 방송은 여전히 집권에 성공한 자의 전리품이다. 홍준표 후보는 “SBS 사장과 보도본부장의 목을 다 잘라야 한다”고 했다. 권력의 방송에 대한 인식이다. 방송은 지지율 1위 후보가 무서워 본래 기사량의 몇 배로 특별 사과방송을 내보내고, 1위를 추격하는 후보는 그런 방송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여론은 권력의 생명줄이고 방송은 여론을 끌어갈 수 있는 수단이다. 권력이 방송을 그냥 놔둘리 없다.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을 사장에 앉히면 방송은 달라지게 돼 있다. 우리는 정권에 따라 방송 화면이 바뀐다는 사실을 두 번 경험했다. 김대중 정권과 이명박 정권 때다. 먼저는 보수에서 진보로 나중엔 다시 보수로 바뀌었다. 이번에도 바뀔 수 있다.

새 권력이 누구냐에 따라 구성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방송 색깔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내부의 혼란과 갈등은 직원들을 피곤하게 하고 자괴감을 갖게 만든다. 요즘 MBC에서 벌어지는 징계 사태도 그 근원은 ‘권력과 방송의 문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선 때마다 희비 갈리는 방송사 풍경 없어져야

언론 선진국도 권력이 언론의 자유를 먼저 보장해준 적은 없다. 언론 스스로가 쟁취해낸 것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했을 때 닉슨 대통령 측은 워싱턴포스트가 보유하고 있던 지역방송 갱신을 불허하겠다는 협박도 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오너 캐서린 그레이엄은 방송을 포기하겠다며 기자들을 독려했고, 결국 대통령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면서 진짜 뉴스를 구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방송으로선 소임을 다할 의무가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권력에 절절 매는 방송을 벗어날 수 없다면 전파 사용권을 반납해야 한다. 전직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방송사 사장과 오너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지방방송의 임무 또한 절실하다. 지금 지방에는 지방권력만 있고 지방언론은 없다. 언론 환경이 어려워지고, 지방언론이 시도지사 얼굴만 쳐다보는 상황으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모든 언론이 시도지사한테 줄을 서서 매달리고 있다. 그래도 지방방송은 달라야 한다.

방송은 국민의 전파를 쓰는 데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 아무나 쓰지 못하는 전파를 쓰면서도 그런 생각이 없다면 염치없는 일이다. 방송은 ‘잊혀진 의무’를 상기해 봐야 한다. 대통령선거 때마다 방송사 내부에서 환호와 낙심이 엇갈리는 풍경부터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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