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괄의 신비한 산야초]

한식날 아침 일찍 차례를 마치고 성묘(省墓)를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오지 못했는데 여유를 갖고 고향을 둘러보니 마음 뿌듯하고 노란 연록의 풀색이 정겹다. 나를 키워주고 조상들이 영면하고 계신 이곳은 항상 푸근하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준다.

송진괄 대전시 중구청평생학습센터 강사
영귀대(詠歸臺) 입구에 있는 소나무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여전히 그 자리에서 손님을 영접하듯 구부리고 서 있다. 동로사(東魯祠) 뜰의 매화나무가 연분홍 꽃이 만발하여 칙칙한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언제 심었는지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는 이 나무는 이젠 노쇠해 열매를 거의 맺지 못한다. 내가 태어난 이곳은 조부와 선친의 체취가 오롯이 배인 지난날 보금자리였다. 이젠 텅 빈 집에 선친께서 심은 나무와 풀들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동로사는 조부(祖父)께서 사표(師表)로 공자(孔子)와 주자(朱子)를 모시고자 만든 사당이다. 성리학(性理學)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고 평생 이곳을 지키다 떠나셨던 할아버지의 영정(影幀)이 모셔진 오적당(吾適堂)도 굳건히 서 있다. 돌아가셔서도 스승을 섬기고자 뒤쪽에는 동쪽의 노(魯)나라를 칭한 동로사를 지었던 것이다.

당신이 계신 오적당의 자리 배치도 살아계신 어른을 모신 듯하며, 영정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읍(揖)하는 모습이다. 어쩌면 정신없이 변해가는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로만 숨어들었던 구한말(舊韓末)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골담초. 출처 Daum 백과사전

사당의 울타리 밖에는 공부방 겸 생활공간이었던 봉강정사(鳳岡精舍)가 우뚝 자리하고 있다. 오도산(吾道山) 능선에 지어진 집이라 하여 그렇게 이름 지었다 한다. 오로지 한학(漢學)밖에 몰랐던 조상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책만 물려받았던 선친(先親)도 이 집에서 가난한  말년을 보낸 가슴 아픈 나의 집이다. 200년은 족히 됨직한 노송(老松)들이 집 앞뒤에 우뚝 서 있다. 이 소나무들은 선고(先考)들이 오가는 모습을 모두 보았을 터이고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킨다.

골담초. 출처 Daum 백과사전
대청마루에 누우면 솔 향이 그윽하고 선고(先考)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소나무 아래에는 풀들이 잘 자라지 못한다. 솔잎의 특성상 다른 식물들은 뿌리내리기가 수월치 않아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도 그 아래 줄기차게 뿌리를 뻗어나가는 골담초(骨擔草)가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골담초에 꽃이 맺히기 시작하면 그것이 활짝 필 날만을 기다리며 뒤꼍을 수시로 드나들곤 했다.

꽃이 피고 벌들의 나들이가 시작되면 가지가 휘어지게 피어나던 노란 꽃은 더할 나위 없는 간식이었다. 옛날에는 구황식물로 꽃을 따먹고 꽃떡과 꽃화채 등을 만들어 먹기도 했던 꽃이다. 줄기차게 따먹어도 계속 피어주던 골담초 꽃가지에는 우리 다섯 남매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스름한 저녁이면 큰 짐승이 내려와 집 주변을 어슬렁거려 화장실도 가기 무서웠다고 어머니께선 가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선친께서 집주변 울타리에 골담초를 심었다고 하셨다. 이 나무는 낮은 키로 자라며 줄기에 가시가 많아 울타리 역할을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그렇다고 줄기의 가시가 산짐승을 막을 정도는 아니다. 아마도 조부나 선친께서 약재(藥材)로 겸하여 사용코자 심었던 나무인 듯하다. 

골담초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 관목(灌木)이다. 키는 1~1.5m 정도 자란다. 줄기는 곧추서서 모여 자라며 가시가 나 있다. 잎은 어긋나며 잔잎으로 이루어졌는데, 잔잎은 타원형이며 잎가장자리는 밋밋하다. 꽃은 노란색으로 5~6월에 잎겨드랑이에서 1~2송이씩 밑으로 처져 피나, 나비처럼 생긴 꽃의 한가운데는 약간 적갈색을 띤다.

열매는 협과(莢果)인 꼬투리로  맺힌다. 우리나라 중부 아래 지방의 산과 들에서 자라고 있으나 관상용으로 뜰이나 공원에도 심고 있다. 주로 해가 잘 비치는 곳에서 자라지만 반그늘이나 마른 땅에서도 잘 자란다. 생장속도가 빠르고 추위에도 잘 견디며 뿌리는 깊게 뻗지 않는다.

골담초. 출처 Daum 백과사전

골담초는 나무인데도 그 이름에 초(草)라는 글자가 붙어 풀로 오인할 수도 있는 재미있는 나무다. 노란 색의 꽃 모양은 새의 부리 같기도 하고 나비모양이기도 하며, 버선 같기도 하다. 그래서 버선꽃나무라고도 불린다. 골담초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뼈를 편안하게 책임진다는 뜻이 담겨 있어 신경통과 골절로 쑤시고 아플 때, 타박상이나 삔 데 약재로 쓰였다.

시골노인들이 가을에 뿌리를 캐서 말렸다가 잘게 썰어서 달여 먹었던 민간약재이다. 습진에 달인 물로 환부를 닦아주기도 하고 꽃을 약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꽃을 따서 술에 담가 마시면 신경통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뿌리를 달여 마시면 진통, 소염의 효능이 있어 기침을 할 때 진해작용을 하고, 관절염, 혈압 강하작용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골담초 뿌리의 생약명을 금작근(金雀根)이라 하여 약용하고 있다.

사당(祠堂) 안에 양쪽으로 서 있는 백일홍나무는 시간이 멈춰 있다. 항시 그 자리에서 그 크기로 우릴 맞는다. 수년 전 봄날에 이 화사한 백일홍꽃 아래서 어머니와 함께 찍었던 사진도 유품이 되었다. 뒤꼍의 버선꽃나무도 피고 진지가 몇 해나 되었는지 헤아리기 어렵다.

가고오고 오고가는 세월의 분수령은 어디쯤일까. 개구쟁이였던 나도 이순(耳順)을 넘었다. 내 후손들도 이 자리를 지킬 것이고, 그렇게 이 나무들도 세월을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내 영혼의 아우라가 되어 오늘도 변함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다. 올해도 버선꽃이 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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