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37>정신병원

이승구 선병원재단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

예전에는 정신병 환자들이 집단요양소에서 강제수용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정신 이상자의 발작과 이상행동이 사회 분위기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던 중 의사 호가스가 정신이상자들이 사회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베들렘 정신병원에서 1735명의 환자를 분석한 바 있다.

이에 동조한 18세기 후반 에든버러의 윌리엄 쿨렌(1710-1790)은 정신병이 신경계통의 이상 질병이며 약물치료가 가능하다고 천명했다.

이어 파리 비세틀 병원의 정신과 의사였던 필립 피넬(1745-1826)은 신경계통 질환을 앓고 있는 정신병 환자의 치료는 감금치료가 아니라 약물치료가 합당하다고 했다. 마침내 그는 정신병 환자가 더 이상 사회의 웃음거리가 돼서는 안 된다며 환자들을 쇠사슬로부터 해방시켰다. 정신병원에 갇혀 버림받고 무기력한 환자들을 사회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림1. ‘정신병자의 쇠사슬을 풀어주도록 명령하는 P.피넬 박사(Pinel Frees the Insane from Their Chains)’ 토니 로베르 플뢰리(Tony Robert-Fleury), 캔버스에 유채, 19세기경, 살페트리에르 병원(프랑스 파리) 소장.

그림 1은 파리의 정신병원 살페트리에르에서 환자들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풀어주라고 지시하는 피넬의 모습이다. 당시 피넬은 이 병원의 원장이었다.

감금치료를 벗어난 통원‧외래 약물치료의 가능성과 효과는 1865년 경 베를린의 빌헬름 그리싱어 교수에 의해 확고해지면서 정신 질환자 치료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1949년 조울증의 특효약인 리튬이, 이후 항우울제, 항정신성 신경 안정제들이 연이어 발명되면서 경증의 정신병 환자들은 사회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파리의 피넬은 당시 수용환자 중 49명을 사회로 돌려보냈다. 이것이 계기가 돼 현재는 정신 신경증 환자의 대부분이 약물치료를 받으며 사회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림2. ‘정신병원(The Madhouse)’ 세르게이 체픽(Sergei Chepik), 캔버스에 혼합재료, 1987년, 개인소장(영국 런던).

1953년 옛 소련의 키예프에서 태어난 화가 세르게이 체픽은 음울하고 불안에 휩싸인 어두운 정신병동과 당시 소련의 암울한 정치적 배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소련의 정치체제에 좌절하다 1988년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에 정착했다.

그는 집단 정신병동의 음울한 모습으로 모국 소련의 정치적 억압을 표현했다. ‘죽은 자의 집(The House of the Dead)’, ‘죽은 자의 집에 대한 추억(Memories From the House of the Dead)’ 등 조국의 집단 수용소를 그린 작품들이다.

그림 2는 옛 소련의 정신병원을 그린 작품이다. 무표정하거나 무의미한 웃음을 짓는 사람, 누워 있는 사람,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토론하는 사람, 춤을 추거나 조각같이 무뚝뚝하게 말없이 서 있는 사람 등 보통의 삶과는 동떨어진 사람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전체적인 집단 수용소의 건물 분위기도 어두워 당시 소련 내 집단 정신병동 수용소의 상황을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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