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이라면 피할 도리가 없다는 말이 아닌가?”

위왕은 어깨를 떨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왕분이 지루한 기다림 속에 함락을 넘보고 있는 동안 서서히 물이 차올라 대량은 온통 물바다로 변해가고 있었다. 성곽은 무너져 내렸고 여기 저기 위나라 백성들의 사체가 떠다녔다. 연일 성곽내부에서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꼬리를 이었으며 백성들의 아우성 소리도 하늘을 찔렀다.

“아직 백기가 나붙지 않았느냐?”

왕분은 진영에서 대량성을 굽어보며 말했다.

“장군 아직 백기를 내걸지 않고 있사옵니다.”

“기다려라. 그러면 저들이 백기를 내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수장시키고 말리라.”

대량성에 물이 차오른지 여러 날이 지났다. 위왕 가(假)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두 손을 들고 백기를 대량성에 내걸었다.

“장군. 대량성에 백기가 나붙었나이다.”

전령이 화급하게 진영으로 달려와 말했다.

“그럴 테지.”

왕분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접수를 위해 갑옷을 정제했다.

왕분은 화살한번 제대로 쏘지 않고 대량성을 함락시켰다. 이때가 기원전 225년이었다.

위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전갈이 함양궁에 전해지자 진왕은 크게 기뻐하며 왕분의 전략을 높이 치하했다.

진왕은 다음차례가 초나라라고 뜻을 굳혔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초나라는 당시 남방의 대국이었다. 영토가 광활하고 생산물이 풍부했으며 나라 전체의 군사도 백만을 헤아릴 정도였다. 때문에 그동안은 초나라와 화친을 맺고 가능하면 싸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랐다. 한나라와 연나라, 위나라를 손에 넣은 이상 초나라를 미룰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초나라와는 역사적으로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진왕의 증조부가 되는 혜문왕 때 재상 장의가 능변으로 초나라를 도모한 적이 있었다.

장의는 대단한 언변가이며 계략가였다. 그가 진나라로 오기 전 일찍이 초나라에서 유세활동을 할 때였다.

하루는 초나라 재상이 빈객들을 불러 거나하게 술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장의도 빈객 자격으로 끼어 있었다. 초나라 재상은 시종 호쾌하게 술잔을 돌리며 자신이 실세임을 과시 했다. 모든 국정이 자신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양 허풍을 떨었다. 빈객들은 그가 마련한 술자리라 아첨을 떨며 그의 기분을 맞추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장의만큼은 술만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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