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지인 한 분의 집안 사람들은 8촌 가족들이 전부 모이면 50~60명이 된다고 한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모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누면서 친목을 도모한다. 집안에는 법조인을 꿈꾸는 자제들이 7~8명이나 된다. 2명은 법조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형님 법조인 집안 동생들에게 “고시 매달리지 마라”

이 집안에서 고시(高試)는 자연스런 목표다. 어른들도 분발하도록 격려해준다. 지인도 그런 쪽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고, 인공지능(AI)이 본격 등장한 후 시작된 변화다. 법조인 조카도 인공지능과 관련된 법조계의 분위기를 전하면서 동생들이 사법고시에만 매달리지는 말 것을 주문한다고 한다.

얼마 전 미국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인공지능이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중형을 선고한 지방법원의 원심판결을 받아들였다. 피고 측은 인공지능의 분석을 근거로 중형을 선고한 것은 부당하다고 항소했지만 대법원은 인공지능이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했다며 기각했다. 인공지능 변호사 시대가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다. 미국에선 IT업체가 만든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Ross)’가 대형로펌에 취직하기도 했다.

인공지능 변호사 로스(Ross) -futurism.com-

‘인공지능 판사’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판사의 40%는 인공지능이 대신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고, 판사는 대체가 쉽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부정적 전망은 인공지능에는 눈물(공감 능력)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전관예우가 그치지 않는 법조계 현실을 돌아보면 오히려 그런 점에 장점일 수 있다. 인공지능은 눈물뿐 아니라 탐욕도 없으니 전관예우 재판이나 끼리끼리 재판은 막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10년 전 재판의 객관성과 법원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배심제(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 판사 배심제’ 요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인간 판사가 재판은 주관하되 인공지능 판사의 판단 결과를 함께 공개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자는 제안이 나올지 모른다. 지금 당장이라도 재벌과 정치인들 재판부터 ‘인공지능 판사’ 투입을 원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일류대도, 고시도 매달릴 필요 없어”

지난 대선 때 사법고시를 존치시켜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남기겠다고 한 홍준표 후보의 약속도 허망해 보인다. 사법고시를 준비해온 동생들은 거기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집안 형님의 충고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류대 진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집안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가 필요 없어지는 상황이니, 명문대에 목맬 필요도 없다.

지인의 아들은 사업가의 길을 가고 있다. 지인도 한때는 아들이 법조인이 되길 원했지만 아들은 거기에 흥미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만화책을 많이 읽혔다. 지인이 군 시절을 미군과 함께 하면서 알게 된 ‘자유로운 미국식 교육’을 실천해본 것이라고 한다. 그 덕인지 사고가 유연하고 창의성이 높은 청년으로 성장했고 유능한 사업가가 됐다. 지인은 고시를 한 것보다 잘 된 일로 생각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한 ‘고시 집안’을 고민에 빠뜨리고 있다. 앞으로는 판사도 변호사도 지금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는 이상,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아이들 교육은, 고시에도 명문대에도 매달릴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본인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그도 무엇이 해답인지는 알 수 없다.

고시 집안의 고민은 우리 모두의 고민거리다. 인공지능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직업은 거의 없다. 법조인과 의사는 물론 대학교수 건축가 회계사 기자 등등. 손과 발로 하는 일은 물론이고 이제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에서도 사람이 컴퓨터를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먼 얘기로만 여겨왔던 인조인간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무서운 것일 수도 있다.

우리 법원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문제가 사법파동으로 번질 조짐이다. 내부 사정이라 외부에 다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내 편만 챙기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배제시키는 줄세우기의 문제로 보인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불공정과 불공평이 늘 문제다. 이런 문제라면 인공지능만한 해결사가 없다. 사법부가 개혁을 거부한다면 인공지능 판사에게 자리를 내주는 날이 더 빨리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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