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괄의 신비한 산야초]

용화사 경내(境內)는 갖가지 꽃들이 만발한 잔치마당이다. 봉황정 계곡에 채색된 진달래와 산벚꽃이 병풍의 그림 같다. 살짝 터치한 연록색의 작은 잎들이 수채화 같은 신비감을 더해준다. 겨울을 끄떡없이 지낸 짙푸른 소나무와 쪽빛 하늘이 전체 배경을 마무리 하니 이는 신(神)의 조화다. 자연의 모습은 이렇게 우리의 삶과 정신영역을 지배한다.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의 벚꽃은 이미 낙화유수(落花流水)다. 잔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은 눈발이 되어 바닥을 덮는다. 벚꽃은 활짝 핀 모습보다 지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누가 말했나. 발아래 펼쳐진 작은 꽃잎들을 밟기가 민망하다. 점점이 박힌 하얀 꽃잎은 밤하늘의 은하수를 연상케 한다.

송진괄 대전시 중구청평생학습센터 강사
절 입구에 바위 사이로 돌단풍, 조팝나무 꽃들이 순백의 모습을 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아래에 노란 괴불주머니꽃이 있는 듯 없는 듯 얼굴을 슬며시 내민다. 개나리꽃 같이 샛노란 모습이면 눈에라도 금방 띠련만 연노랑의 괴불주머니 꽃은 땅 색과 비슷하여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두 뼘 남짓 작은 키의 연록색 줄기 위에 차곡차곡 가지런히 물건을 쌓아 올린 듯한 꽃은 큰 특징이 없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지만 별 관심을 끌지 못 하는 풀이다.

괴불주머니는 현호색과의 두해살이풀로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한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어 산괴불주머니라고 불린다. 속이 빈 줄기는 곧고 가지가 갈라지며 키는 50센티 정도다. 현호색(玄胡索)과 같이 둥그런 뿌리가 달리지 않고 땅속으로 곧추 뻗는 뿌리를 지닌 것이 특징이다. 잎은 날개깃처럼 한두 번 갈라진 겹잎이다. 얼음이 녹을 무렵 새싹이 돋아나 일찍 꽃이 피고 꽃 피는 기간이 길어 늦봄까지도 꽃을 볼 수 있다. 4 ~ 6월에도 한 개의 꽃줄기에서 여러 송이가 노란색으로 피는 탐스러운 식물이다. 비슷한 종류로 큰괴불주머니, 자주색 꽃을 피우는 자주괴불주머니, 눈괴불주머니, 동글동글한 열매를 맺는 염주괴불주머니 등이 있다. 유독(有毒) 성분이 있어서 함부로 식용해서는 안 된다.

이 식물은 이름이 참 별스럽다. ‘괴불’의 사전적(辭典的) 의미는 색 헝겊을 반듯하지 않게 비뚤어지게 접어서 솜을 넣고 수를 놓은 어린 아이의 노리개이다. 아마도 이 풀의 꽃이 옛날 남녀 아이들의 옷고름에 달았던 그 노리개인 괴불을 닮아서 그렇게 이름을 짓지 않았나 싶다.

자료에 의하면 괴불주머니는 옛날에 어린이가 주머니 끈 끝에 차는 세모꼴의 조그만 노리개인데, 오방색 헝겊을 귀나게 접어서 속에 솜을 도톰하게 넣고 겉에 수를 놓아 한 개로 만들거나 여러 개를 색 끈에 이어 달기도 했다. 이것을 차고 다니면 삼재(三災)를 막아주고 요사스런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여겼다고 한다.

괴불주머니
한방에서는 괴불주머니를 황근(黃菫)이라 하여 지상부를 약용하였다. 옴이나 버짐, 종기에 이 풀을 물에 넣고 달여 복용하거나 짓찧어 환부에 바르면 효과가 있었다. 이질, 복통에도 내복(內服)하였고, 뱀이나 독충에 물렸을 때 짓찧어 붙였으며, 폐결핵으로 인한 각혈(咯血)을 그치게 하는데 이용하였다. 최근에는 이 풀의 지상부에서 알츠하이머 치료제 성분을 분리 추출하였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민간요법으로는 산모(産母)의 진통이나 경련의 치료제, 이질, 복통, 타박상 등에 사용했다. 다양한 알칼로이드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생즙(生汁)을 물이나 술에 우려 천연 농약으로도 사용 하였다.

괴불주머니는 꽃이 참 특이하다. 마치 종달새가 먹이를 잡기 위해 날렵한 자세로 달려드는 모습이다. 꽃잎이 위아래로 갈라져 있어 부리를 벌린 듯한 모양이다. 아니면 하늘과 지상의 인간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신성한 중재자로서 솟대위에 앉아 하늘로 날아오를 것처럼 앉아 있는 새 같기도 하다.

가지런한 꽃모습이 꽃잎 끝에서 뾰족하게 갈라지는데 이 형상에서 우리 선조들은 괴불주머니로 불렀던 같다. 어렸을 적에 동네 큰 마당이 삼각형 모양이어서 괴불마당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우리 고유의 야생화나 각종 식물이름에 우리의 옛말, 옛것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틈 사이로 듬성듬성 피어있는 괴불주머니는 화려하지도 않다. 꽃 색깔이 노랗다지만 주위 색으로 흡수되어 눈에 잘 띠지도 않는다. 수수한 초록의 이파리에 작달막한 키의 야생화지만 우리 고유의 소중한 약초인 것이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꽃일게다.

눈을 들어 벚나무를 보니 이파리도 조금씩 내민다. 올해는 꽃 피는 순서가 뒤죽박죽인 것  같다. 이상고온현상 때문인지 예전에 보던 절기와는 헷갈린다. 잦은 야외현장수업으로 금년은 봄맞이 꽃구경은 실컷 한다.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현장 생태학습은 자연감상을 겸한다. 느지막하게 시작한 약초강의로 호사를 누린다.

괴불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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