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다른 듯 같은 길', 안희정 차기 행보에 주목

더불어민주당이 10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진 민주 정부가 안희정 충남지사까지 연결될 지 관심사다. TV조선 자료화면 재구성.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후보는 본선에 진출해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적폐청산을 주창하며 파격적인 행보와 인사로 주목받고 있다. 취임 후 첫 국정 지지도 조사에서 80%가 넘는 지지를 얻는 등 국민적 신임도 대단하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 경선에서 경쟁한 ‘2등’ 안희정 충남지사는 경선 종료와 함께 도정에 복귀했다. 계속되는 충남도 가뭄지역을 찾아 현장을 살피고, 노사분쟁(갑을오토텍·유성기업)해결을 위한 중재에도 팔을 걷었다.

경선 이후 또 다른 시간 속을 걷게 된 두 사람이지만 문 대통령은 중앙 정부에서, 안 지사는 지방행정 책임자로서 ‘민생행보’와 ‘위민행정’이란 길을 걷고 있다. 

'盧의 친구' 문재인, '盧의 왼팔' 안희정..운명 같은 시간들

이처럼 두 사람이 ‘다른 듯 같은 길’을 가도록 만든 뿌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들은 ‘동지(同志)’로 통했고, 정치적 관계에 앞서 정신적 줄기로 이어져 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친구’로, 안 지사는 ‘왼팔(좌 희정)’로 불렸다.

대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친노(친 노무현)의 분화(分化)가 일어났다. 참여정부 시절 사람들도 문 대통령과 안 지사로 양분됐다. 경선 과정에서 두 진영 사이 다소 격한 감정이 오가긴 했지만, 문 대통령 당선 확정 때 안 지사의 ‘볼 뽀뽀’ 세리머니로 그동안의 서운함을 털어내려 했다.

안희정 지사는 25일 개봉하는 노 전 대통령 다큐멘터리 영화에 인터뷰를 통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회한을 전했다. 영화

안 지사는 2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에 출연해 진심을 털어놓았다. 그는 영화 속 인터뷰에서 “(노무현과 함께했던)그 시간과 정서를 다시 보는 것이 너무 싫고 괴롭다. 제가 애써서 안 보려 하는지도 모른다”며 “그냥 역사 속 한 인물로서만 자꾸 보려고 하지 내 인생 속에서의 노무현으로 보면 나는 너무나 힘들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지난 20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8주기를 맞아 노무현 재단이 광화문에서 연 추모문화제에 참석해 노 전 대통령을 회상하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안 지사는 “노 대통령은 나의 모든 것이었다. 저한테 스승이었고, 아버지 같았고, 모든 역할을 다해주셨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에 대해선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대의 상쾌한 공기 같다. 우리 모두에게 활력을 주는 것 같다”고 치켜세웠다.

일각에선 이번 경선을 앞두고 친노 인사들이 참여정부 이후에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온 만큼, 경선 후 다시 힘을 합칠 상황을 염두에 둔 '위장이혼' 아니냐는 의심도 했다. 그때 나온 말이 ‘페이스메이커’, ‘스패어 타이어’란 단어들이다. 안희정은 문재인 ‘다음(차기)’이란 얘기다.

노무현→ 문재인→ 안희정, '민주 정부' 이어질까

지난 23일 경남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친노의 후예’들이 모였다. 이날 주인공은 단연 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제가 대선 때 했던 약속, 오늘 이 추도식에 대통령으로 참석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23일 경남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안희정 지사. 청와대 제공.
이어 “노무현의 꿈은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부활했다. 우리가 함께 꾼 꿈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못다 한 일은 다음 민주 정부가 이어나갈 수 있도록 단단하게 개혁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안 지사는 문 대통령의 뒤에 서 있었다. 추도식장 입장 때도 몇 발짝 뒤에서 걸었고, 헌화·분향 때도 그의 자리는 문 대통령 ‘다음 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끈 참여정부 시절,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내며 지근에서 보좌했다. 지난 18대 대선에 출마해 경험을 쌓았고, 당 대표 시절 확보한 탄탄한 당내 조직은 지난 대선에서 여유 있는 승리를 안겼다.

안 지사는 그렇지 못했다. 참여정부 시절엔 정치자금법 혐의로 구속돼 1년간 복역했다. 출소 이후에도 노 전 대통령에게 누가 될까 총대를 메고 입각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당을 지키며 ‘직업 정치인’이란 외길을 걸었다. 그리고 ‘보수의 땅’ 충남에서 진보의 깃발을 꽂았다.

같은 뿌리에서 분화했지만 두 사람이 걸어온 길과 시간은 이렇게 운명처럼 달랐다. ‘시대교체’를 이루지 못한 안 지사는 문재인의 시대 ‘2인자의 시간’ 속에 있다. 일부에서는 안 지사를 차기 유력 대선 후보로 점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터다.

차기 대권 노리는 안 지사, 보궐 출마 유력..다음 추도사 할까?

다음 대선을 준비 중인 안 지사는 이번 경선에서 절감한 ‘조직력 부재’ 극복을 위해 내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초선 문재인’이 ‘전(前) 대선후보’란 타이틀로 당권을 쥐고 조직을 구축해 대망을 이룬 것처럼, ‘경선 2등’ 안 지사도 그의 전철을 밟을 태세다.

안 지사의 ‘친구’ 박수현 전 의원이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된 것도, 안 지사의 여의도 입성을 염두에 둔 문 대통령과 안 지사 사이 ‘무언의 사인(sign)’이 작동했으리라 짐작된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사 말미에 이런 다짐을 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5년 뒤-문 대통령이 추구하는 ‘4년 중임제 대통령’ 개헌이 이루어지면 더 몇 년 뒤-안 지사가 ‘차기’ 대통령으로 참석해 노 전 대통령 추도사를 읊는 날이 올지는 아직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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