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대통령이 일몰제 대안 만들겠다는데, 왜 서두르나

23일 봉하마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권선택 대전시장이 만나 악수 하고 있다. 출처 : 권선택 대전시장 페이스북

권선택 대전시장이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시민단체 등이 환경파괴와 특혜시비 등 여러 이유로 반대하고 있지만, 귀담아 들을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25일 도시공원위원회를 개최한 것만 봐도 반대의견을 묵살한 노골적인 ‘강행의지’가 엿보인다.   

권 시장은 틈나는 대로 ‘사업추진의 불가피성’을 강조해 왔다. 헌법재판소 위헌판결로 2020년이 되면 도시공원으로 지정한 곳을 모두 해제해야 하는데, 이후 닥쳐올 난개발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그들에게 일부 이익을 보장하면, 최소한 70%의 도시공원을 유지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일견 타당한 이야기로 들린다. 

그러나 권 시장에게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내포하고 있는 정책철학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공원조성은 민간이 아닌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특히 재정이 열악한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가 도맡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 일을 지방정부에 떠 넘겼다. 지방정부가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도시공원 유지를 책임지라고 ‘꼼수’를 부린 셈이다.

이 ‘꼼수’는 이명박 정부가 기획하고 박근혜 정부가 체계화한 여러 친토건 정책 중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민간공원 특례제도는 이명박 정부시절인 2009년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민간자본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박근혜 정부가 나서서 민간자본의 몫을 더욱 키워주기에 이른다. 그게 2015년의 일이다. 

결과적으로 권선택 시장이 민간공원 특례사업에 매달린다는 의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에 동의하고 이를 실현하기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뜻이다. 최초로 ‘민주당 소속’ 시장을 선출해 준 대전시민과 지지자들에 대한 화답이 과연 이런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철학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국가 토지정책 기조에 토지 공개념을 확대해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비하자’는 환경단체 제안에 공감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함께 ‘정부 전담부서를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하는 등 가장 진보적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후퇴시킨 공공정책을 문재인 대통령이 복원하겠다고 공언한 마당에 권선택 대전시장이 무슨 이유로 이를 서두르고 있는지,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마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의 억측과 소문도 무성하다. 그 또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장의 숙명이라고 권 시장 스스로 생각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다른 길’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중앙정부 결정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권 시장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다른 길’이 분명 존재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의 약속을 잊고 미적거릴지라도 권선택 시장이 거꾸로 대통령을 설득할 만한 좋은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제2국무회의’ 내지 ‘중앙지방협의회’ 상설화로 광역자치단체장을 수시로 만나겠다는 것이 대통령 공약이자 의지 아닌가. 

이 협의체가 상설화되면 ‘KTX 세종역 신설’과 같은 지역의 이해가 충돌하는 사안보다 자치단체 모두의 동의를 구하기 쉬운 ‘민간공원 특례사업 대안마련’과 같은 사안이 가장 앞서는 의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과거 정부와 달리 ‘대통령의 철학, 대통령의 약속, 대통령을 설득할 기회’, 이 세 가지가 모두 있는데, 왜 과거 정부의 정책에 매달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권선택 대전시장은 지난 23일 계획된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을 폄훼하고 싶지 않지만, 그가 건져 돌아온 것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었다. 권 시장의 페이스북에는 그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다. 

이왕 쓴 소리를 시작한 김에 한마디만 더 보태야겠다. 지금 권선택 시장에게 필요한 것은 ‘문재인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아니라 ‘문재인과 함께 가는 정책철학’이다. 소속 정당의 철학을 구현하지 못하는 정치인이 어디 한둘이겠나. 그러나 권선택 시장에게서 도무지 ‘결’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갑천친수구역, 상수도 민영화, 민간공원 특례사업 추진 등은 ‘공공성 강화’측면에서 완전히 정반대 길이다. 출자출연기관 노동조합의 노사정협의 제안에도 눈을 감고,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공공부분 비정규직 제로화’에도 굼뜬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게 대전시다. 권 시장이 가장 먼저 보듬어 주어야 할 대전시 공공부문 노동자 사이에서 “대통령 혼자 ‘노동존중’을 외치면 무엇하나” 하는 자괴감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외면해선 안된다.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난 표심을 헤아리는 것은 ‘대통령만의 의무’는 아니다. 선출직 공무원이라면 변화한 시대상, 민심의 요구를 빨리 읽고 발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 하물며 대통령과 같은 정당의 자치단체장이 ‘결’이 달라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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