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듬해였다. 진왕은 여세를 몰아 연나라의 잔당을 멸하겠다고 결심했다.

형가의 암살 기도가 있었으므로 더 이상 뒤로 미룰 이유가 없었다. 총력전을 벌여서라도 연나라를 없애야 했다. 그것이 보복의 끝이었다.

진왕은 추가 병력을 왕분에게 내려 보내고 끝까지 추격하여 연왕과 태자를 생포하라고 명령했다.

한편 형가의 암살기도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뒤 쫓기고 있던 연왕과 태자 단은 정예병들을 이끌고 요동반도로 달아나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은 달아나면서 책략을 구사했지만 전세를 전복시킬 방도가 나오질 않았다.

신하들은 전전긍긍하며 자신들의 살길만을 구가하고 있었다.

연왕은 단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접경지역에서는 매일같이 진나라 군대가 세를 더하며 밀고 온다는 소식만이 전해올 뿐이었다. 간간이 쳐들어오는 적을 겨우 막았다는 전갈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패하여 후퇴하고 있다는 소식밖에 없었다.

연왕이 참담한 표정으로 진영에 앉아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있었다.

그때 연나라의 공자 명(明)이 연왕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는 그러지 않아도 태자가 되지 못한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처지였다. 더욱이 야심을 가지고 연나라를 키워보겠다고 단단히 벼루고 있었는데 태자에 책봉되지 않아 여차하면 새 나라를 세우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이판사판으로 연왕을 찾았던 것이다.

“대왕마마. 저에게 비책이 있사온데 말씀을 올려도 되겠나이까?”

연왕 희는 비책이란 말에 귀가 번쩍 띄었다.

“비책이라면 말해보아라.”

연 왕이 조급하게 물었다. 그러자 명은 주변을 둘러보며 머뭇거렸다. 옆에 태자 단과 군신들이 무겁게 앉아 있었으므로 입을 열수 없었다.

연 왕은 명의 표정을 살핀 다음 그들에게 모두 진영 밖으로 나가줄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공자 명에게 귀를 가져갔다.

“대왕마마. 우리는 그동안 진나라와 화평을 맺고 잘 지내 왔사옵나이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진나라의 총공세를 받고 있는 것은 태자 단이 진왕의 암살을 기도했기 때문 이옵나이다. 그는 자신이 진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진왕에게 당한 굴욕을 풀기위해 암살을 기도했고 결국 그것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 같은 형국을 맞고 있는 것이옵나이다.”

태자가 사적으로 자신의 모욕을 보복키 위해 일을 저질러 연나라가 위급하게 된 것이란 말이었다. 연 왕도 일정부분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찌하면 좋겠다는 말이냐?”

연 왕은 조급했다. 입술이 타들어갔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