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태자 단의 수급을 거두어 진왕에게 바치면 멸국 만은 면할 수 있을 것이옵나이다.”

“어찌 그렇게 한단 말이냐?”

연 왕이 역정을 내며 고함을 버럭 질렀다.

“대왕마마. 지금 도망을 가고 있지만 그 끝은 어디오니까? 멸국 말고 또 무엇이 있겠나이까? 태자의 목을 바쳐 사직을 보전할 수 있다면 태자의 입장에서도 보람이 있는 일이 아니겠나이까? 지금 남은 방도는 그것뿐이옵나이다. 시간을 번 다음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 옳을 것이옵나이다.”

공자 명은 단호하게 말하고 자리를 물러났다.

연 왕은 명의 책략을 곰곰이 되씹다 다시 그를 불렀다.

“그럼 그 일을 누가 한단 말이냐?”

“대왕마마. 이 몸이 하겠나이다. 사직을 보전하기 위해 해야 될 일이라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나이까? 장수 두 명만 붙여주시면 일을 성사시키겠나이다.”

연왕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자 명은 연왕이 붙여준 장수를 양쪽에 달고 군막에서 쉬고 있던 태자 단에게 갔다.

단은 지친 상태여서 곤하게 자고 있었다.

공자 명은 단의 자는 모습이 참안타깝게 느껴졌지만 조국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자고 있는 그의 수급을 거둘 수는 없었다. 사적으로는 태자 단이 형이기에 눈물이 복받쳐 올랐다. 동생이 형을 죽일 수밖에 없는 형국이 답답했다.

명은 형 태자를 흔들어 깨웠다.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소이다. 다른 방책이 없어 태자저하를 찾아 왔으니 고견을 들려주십시오.”

명은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쫓기는 처지에 내 무슨 고견이 있겠느냐?”

태자는 갑작스런 질문에 영문도 모르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아직 잠에서 설깬 모습이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때 공자 명이 칼을 빼들어 단의 목을 잘랐다. 군막이 피로 얼룩졌다.

명은 단의 목을 함에 넣어 진나라에 보내고 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화친을 맺어 연의 사직을 보전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치도 않는 말이었다. 진왕은 단의 목으로 연나라를 용서할 수 없었다. 불씨를 남기는 것은 대업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진왕은 왕분에게 더욱 강하게 밀어붙여 연을 멸하라고 명했다.

왕분은 보충 받은 군사를 합세시켜 요동을 정벌하고 최후의 발악을 일삼던 연왕 희와 그 친족 그리고 신하들을 사로잡아 함양으로 압송했다.

이로써 연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기원전 222년의 일이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