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고등학교 학부모들과의 대화 자리에서다. 강제적인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더니, 그중의 학부모 몇이 금세 어두운 낯빛으로 바뀌었다.
“말씀은 옳으신데, 우리 애들이 집에 있다고 생각만 해도 너무 갑갑해요. 애들이 집에 와서 제 방 닫고 들어가면 무엇을 하는지 답답하다니까요.”

“지금도 휴일에는 오전에 학원 갔다 와서는 가방 던져놓고 게임하거나, 시내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배회하는데… 아이들이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다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까 걱정되거든요.”
“우리 집은 둘 다 늦게 들어오는 맞벌이인데, 고등학생 아이가 집에 일찍 오면 무엇을 하겠어요? 공부보다 놀기 바쁜데… 그저 학교에 잡아두는 것이 제일 나아요. 공부 안하고 잠만 자도 학교에 있는 것이 훨씬 안심되니까요.”

아이들 하루 8시간에서 최대 15시간까지 묶어놓는 학교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학교가 가장 안심할만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학생들이 학교에 있어야 가장 안정된 생활을 하리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학교는 기대와는 달리 안심할만한 곳이 아니다.

현재의 학교는 아이들을 하루 최소 8시간에서 최대 15시간까지 묶어놓고 사육하는 곳과 다름없다. 아이들은 주체 못할 정도로 활동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책상에 앉아 기나긴 학습 시간을 참고 견뎌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스트레스를 공격성으로 드러내는데, 이러한 경향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학교폭력이다.

만만한 약한 아이를 집단으로 괴롭히거나 툭하면 신경질을 내거나 이해할 수 없는 공격성으로 서로 다투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그런 가운데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들은 부적응아로 전락하는 것이다.

왕따 가해학생 가운데 소위 모범생이 끼어 있는 것도 심심치 않은데, 대체로 일부 아이들은 우려할 만큼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두려운 곳이기도 하다. 자칫 왕따 당하거나 아니면 공격성이 강한 아이들에게 희생될 수도 있는 정글 같은 곳이다.

“소리 지르는 애들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신기했어요. 우리 애들은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게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최근에 미국의 초등학교로 참관 연수를 다녀온 초등 교사의 말이다. 초등학교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등의 아이들도 쉬는 시간에 복도와 교실에서 소리를 유난히 크게 지르며 다닌다. 대화도 차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폭력적인 언어와 과잉 행동 등은 우려를 넘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교육과제가 되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학교에서 정규 수업이 끝난 뒤에도 머무르라고 하는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법적인 노동시간도 하루 여덟 시간인 것을 상기해 보라. 그럼 남아서 공부하고 싶은 아이들은 어쩌라고?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학교 내에 독서시설을 갖춘 공부방을 만들어주고 남아서 공부하면 된다. 이 공부방을 모든 학생들에게 개방하고, 더 나아가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공부하거나 또는 학습 부진아를 위한 개별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된다.

이 모든 것은 철저하게 학생의 자발적인 의사를 확인하여 시행하여야 한다. 학부모의 요구가 있더라도 학생이 원하지 않으면 참여시키기 않아야 한다. 공부방도 교사들이 남아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원자로 그룹을 만들어 지도를 맡기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방과후활동·체험활동 등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방안 강구해야

학생들이 귀가하여 집이나 거리에서 빈둥거리며 노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들에게 즐거움도 주면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만한 의미 있는 교육 과정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떨까? 지금 정규수업 이외의 방과후활동, 체험활동,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등을 보다 다양하고 풍부하게 계획하여 지역사회와 함께 실행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고등학생 철수가 화요일 오후 3시 정규수업이 끝나면 동아리 학생들과 가까운 지역의 목공교실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의 전문가 마을교사에게 목공을 배우며 장래 건축가, 목공예가, 목수 등의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갖는다. 또 철수는 봉사활동이 예정된 수요일에는 가까운 마을의 경로당에 필요한 책상을 목공 교실 친구들과 만들어 주는 봉사를 한다.

목요일의 체험활동으로 마을교사의 안내로 동구에 있는 향토유적인 남간정사를 방문하여 한옥 건축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한옥을 현대화한 여러 건축물을 친구들과 인터넷으로 찾아보며 한옥의 현대화에 대해 토론을 갖는다. 금요일에는 마을의 배드민턴 클럽에서 여는 경기에 참여하여 운동을 한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학생과 학교 교사, 지역의 전문가, 마을교사들이 함께 계획하고 실행하도록 한다. 이러한 철수의 생활이 정상적이라 할 수 있다.

학교가 위험한 이유는 그 좁은 공간에 참기 어려울 정도로 지겹게 붙잡아 두고 있는 입시경쟁교육 체제 때문이다. 이제 학교를 행복한 곳으로 만들려면 아이들이 지겹지 않을 정도로 공부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 입시경쟁교육에 매몰된 학교에 무작정 아이를 맡겨놓고 안심하는 부모는 정작 우리의 학교와 아이들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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