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괄의 신비한 산야초] 진통·이질·복통에 효과
대청호수가 내려뵈는 이곳 능선 길은 아늑하고 포근하다. 시원한 물색과 주변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외국에 있는 친구는 이 모습을 보고 그냥 쳐다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웅장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한 우리 산천의 본 모습이다. 한자리에서 사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곳은 어느 풍경 부럽지 않다. 집 가까이에 이런 풍치를 즐기며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석성(石城)을 한참 지나면 시야가 확 트이는 자리에 묏등이 있다. 무덤 가장자리에 시들은 꿀풀이 옹기종기 모여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꽃은 왜 이렇게 산소 주변에 많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꽃잎은 떨어졌고 원줄기와 꽃대궁은 누렇게 변해 사색(死色)이 완연하다. 초여름 꽃이 핀 후, 하지(夏至)가 지나면 말라죽는 운명을 타고난 풀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꿀풀을 하고초(夏枯草)라 이름 지었다. 몇 개의 꽃대만이 보라색 꽃망울을 달랑 달고 마지막 고운 빛을 아쉬워하는 듯 흔들거리고 있다.
길가나 산자락을 오가다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 풀이다. 초여름부터 보랏빛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 눈에 잘 띄는 꽃이다. 유난히 꿀이 많아 꿀풀이라고 했다. 밀원(蜜源)식물로 양봉농가에 큰 도움이 되는 고마운 식물이기도 하며, 꿀풀의 다른 이름이 꿀방망이다. 초여름 꽃이 필 때 그 꽃을 따서 입에 물고 빨면 꿀물이 나와 길가에 핀 꿀풀은 어린 아이들의 손에 수난을 당하곤 했다.
꿀풀은 전국의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높이는 20~30㎝정도 자라며, 원 줄기는 네모지고 하얀 털이 나 있다. 잎은 마주나는데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둔한 톱니가 있다. 꽃은 5~7월에 피고 붉은 보라색 또는 하얀 색의 통꽃이며, 방망이처럼 생긴 꽃차례에 빽빽이 달려 있다. 흰 꿀풀은 종이 귀해 보기가 힘들다. 봄에 어린순을 캐서 나물로 먹기도 하며, 화단에 관상초로 많이 심었다. 하고초라는 이름 외에 내동초(乃東草), 제비꿀풀, 봉두초(棒頭草), 가직골나무, 두메꿀풀 등으로도 불렀다.
「삼이는 육, 육륙이 삽십육, 꿀풀은 구구단을 안다 / 한 포기에 꽃 세 개 / 한 층에 두 포씩 / 한 줄기에 여섯 층 / 초등학교 삼학년 논밭길을 걸으며 / 보라색 꽃방망이를 휘둘렀다 / 꽃 한 개 쪽 빨고 / 삼이는 육 / 또 한 개 쪽 빨고 삼이는 육 / 육륙이 삼십육 / 젊어도 늙은 지금 / 달콤하던 꿀풀을 아직도 못잊어...........」. 김종태 시인의 ‘꿀풀’이란 제목의 싯귀절이다.
현대화,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잃어버리고 잊혀진 우리의 토속적인 것에 깊은 애정을 갖고 쓴 시인의 노래다. 산과 들에서 소리없이 피었다가 스러지는 잡초에서 우리의 참모습을 찾아 노래한 시인의 감성이 가슴에 닿는다. 이 시인(詩人)은 ‘어느 한사람, 삶이 외롭거나 지치거나 힘들 때 우리의 산하(山河)를 다니며 우리의 풀꽃들을 보라. 바로 거기에서 우리의 살아 온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살아가야 할 존재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수 년 전 경남 산청(山淸)의 약초축제를 구경하던 여행길에 함양의 꿀풀 축제에 들른 적이 있다. 들녘에 만발하던 자색(紫色)의 향연이 아직도 생생하다. 신비한 느낌을 자아내는 보랏빛 색깔이 지천에 이렇게 깔려 있을 줄이야. 그곳 사람들이 야생화인 꿀풀 축제를 통해 삶을 확인하고 즐기며 사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한 낮 더위가 성성한 계족산에서 무성하게 자란 풀숲의 자색꽃 이파리가 눈에 띈다. 누군지 모를 유택(幽宅) 모서리에 시들은 꽃대를 지탱하고 서 있는 꿀풀이 오가는 이를 맞는다. 멀리 대청호반 끝자락에 쪽빛 하늘이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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