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이사는 진왕의 부름을 받고 대전에 나갔다.

진왕은 제나라만 남았으므로 계책을 찾고 있었다. 그는 용상에 앉아 있다 이사를 보고 반기며 앉을 것을 권했다.

이사는 큰절을 올리고 단아래 조용히 앉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진왕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제나라뿐이오. 과인이 많은 군신들과 공략방법을 숙의했지만 탐탁지 않아 그대를 불렀소. 군신들은 전 병력을 투입하여 일거에 멸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어찌 내키질 않소. 좋은 계책이 없겠소?”

차를 권하며 물었다.

이사는 늘어진 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찻잔을 받아 마시고 나직하게 말했다.

“제나라는 피를 흘리며 애써 침공할 필요가 없사옵니다. 6국 가운데 5국이 대왕의 용감무쌍한 군사들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을 보았으니 제나라는 쉽게 무너질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무슨 묘책이라도 있소?”

“그렇사옵니다. 연왕을 붙잡아 압송하고 있는 왕분 장군에게 명하여 제나라 수도 임치를 급습토록 하는 반면 제왕에게 항복하도록 권하면 그도 응할 것이옵니다. 다만 제왕이 항복하면 5백리의 땅을 주고 후손들이 대대로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대왕마마의 친서를 전하신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옵니다.”

“5백리의 땅을 준다.”

진왕 영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의구심이 든다는 표정이었다.

“아니옵니다. 대왕마마. 제왕을 거두어 제나라를 멸한 뒤 그를 내친다면 5백리 땅이 무슨 의미가 있겠사옵니까?”

“옳은 말이로다.”

진왕은 무릎을 쳤다. 그리고는 즉시 이사의 말대로 왕분에게 파발을 보내 제나라 수도 임치를 기습적으로 치도록 명하고 다른 한편으로 약조문을 제왕에게 전하도록 했다.

제나라 왕 건은 진나라의 기습공격을 받아 순식간에 임치가 포위당하는 형국을 맞고 말았다. 손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당한 일이라 답답하기 한량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나라는 이미 군사력이 말이 아니었다.

그동안 제나라는 진과 동맹을 맺고 연, 조, 위, 한, 초나라 등과는 도움을 나누지 않았다. 주변국이 진의 공격을 받아 쓰러질 때도 진의 편에 서서 주변국에 대해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만큼 진을 가까운 동맹국으로 판단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쳐들어 올 때도 동맹관계 차원의 방문정도로만 생각했다. 왕분도 이점을 잘 이용했다. 지방성을 지날 때도 애써 피를 흘리지 않았다. 임치성을 포위하고서야 공격을 위해 들어왔음을 공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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