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인생과 처세] <314>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남자는 본 이름 대신 아명(兒名), 자(字), 호(號), 시호(諡號)와 같은 여러 호칭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왕의 호칭은 어떠할까 살펴보기로 한다.

▴ 왕은 태어날 때 이름을 갖지 않는다.
왕의 맏아들로 태어나면 원자(元子)가 될 뿐이다.
따라서 원자에서 세자(世子)가 될 때까지는 그저 ‘원자’라고 부를 뿐이다.

조선시대에는 원자로 책봉되면 바로 관례를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례를 행하면 자(字)를 받는데 자(字)는 그 사람이 일생 동안 명심해야 할 훈계 또는 축복의 내용을 담은 두 글자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세종의 자는 원정(元正)이고 정조의 자는 형운(亨運)이라 했다.

▴ 왕위를 이을 후계자인 왕세자(王世子)로 책봉되면 ‘이름’을 받는다.
세자의 이름을 짓는 절차도 복잡하다. 원자를 세자로 책봉한다는 결정이 나면 대신들은 세자 이름을 세 가지로 지어 왕에게 올리고 왕은 그 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정하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사람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처럼 왕의 이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왕의 이름을 부르거나 글로 적는 것은 절대 금기 사항이었다.
만약 잘못하여 글로 쓰거나 하면 큰 벌을 받았다.
과거 시험에서 역대 왕들의 이름이 답안에 한글자라도 들어가면 무조건 낙방이 됨은 말 할 것도 없고 곤장 백대의 중형을 받게 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람들은 역대 조선 왕의 이름을 죽 외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상소문을 쓰거나 과거 시험을 보거나 할 때 또는 문장을 지을 때에 왕의 이름자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왕의 이름은 언어생활에서 사용되지 않는 특이한 글자나 외자를 쓰거나 아니면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보면, 세종의 이름은 ‘이도’(李도), 인종은 ‘이종’(李倧), 영조는 ‘이금’(李昑), 정조는 ‘이산’(李산) 등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처럼 창업을 하여 왕이 되었거나 또는 반정을 통해 왕이 되었거나 방계로부터 들어가 왕위를 계승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왕이 됨과 동시에 왕이 되기 전의 이름을 버리고 개명을 한다. 예를 들면 태조 이성계의 이름인 성계(成桂)는 왕위에 오르면서 단(旦)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 조선시대 왕들도 일반 유학자들처럼 자신의 호(號)를 한 개 이상 몇 개씩 갖는다.
예를 들면, 정조의 호는 홍재(弘齋)이고 순조의 호는 순재(純齋)이다.

▴ 신료들은 왕의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존호(尊號)를 지어 올린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이 종식되었을 때 난을 극복한 선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지성으로 대의를 실천함으로써 하늘을 감동 시키고 이로써 국운을 밝혔다.’는 뜻의 ‘지성대의격천희운’(至誠大義格天熙運)이라는 존호를 지어 올렸다.

▴ 왕의 삼년상이 끝나면 왕의 신주(神主)가 종묘에 들어가는데 이 종묘(宗廟)에서 부르는 호칭이 묘호(廟號)다.
즉 종묘에서 역대 왕들의 제사를 지낼 때 신위(神位)에 적는 호이다.
묘호는 신료들이 왕의 일생을 평가하여 붙이는데 조(祖)와 종(宗)으로 한다.
조와 종을 붙이는 기준이 불분명 하지만 대체로 조(祖)는 왕조를 창업하거나 또는 국가변란(전쟁, 반정 등)에서 백성을 구한 업적이 있는 왕들(태조, 세조, 선조, 인조 등)에게 붙여지고 종(宗)은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사회기반을 안정시킨 왕들(세종, 성종 등)에게 붙여졌다 할 수 있다.

왕의 무덤을 능(陵)이라하고 능(陵)을 지칭하는 호칭이 능호(陵號)이다.
경기도 여주에 있는 영릉(英陵)은 세종의 능호이고 서울 태능에 있는 태릉(泰陵)은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능호이며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광릉(光陵)은 세조의 능호이다.
이처럼 왕은 살아생전에 받는 칭호와 죽어서 받는 무수한 칭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왕의 많은 칭호는 보통 붙여서 쓴다. 그 순서는 보통 맨 앞에 묘호(廟號) 그 다음에 차례로 중국에서 내려주는 시호(諡號), 존호(尊號) 그리고 신료들이 올린‘시호’를 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왕들은 보통 20 ~ 30자의 호칭을 갖고 있다. 많은 경우는 60 ~ 70자의 칭호를 갖는다.
세조의 예를 들어 보면‘세조’의 정식 호칭은 ‘세조혜장승천체도열문영무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대왕(世祖惠莊承天體道烈文英武至德隆功聖神明睿欽肅仁孝大王)’이다.
여기에서 세조(世祖)는 묘호이고 계유정란을 통하여 나라를 중흥시킨 공이 있다고 하여 조(祖)를 붙여 세조(世祖)라고 한 것이다.

그 다음의 ‘혜장’(惠莊)은 엄격, 공정으로 백성에게 임했다는 뜻으로 명나라의 황제가 세조의 일생을 평가하여 내려 준 시호이다.
‘승천체도 열문영무’(承天體道烈文英武)는 계유정란으로 대권을 잡은 세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신하들이 올린‘존호’(尊號)이다.
‘지덕융공성신명예흠숙인효’(至德隆功聖神明睿欽肅仁孝)는 신료들이 올린 시호(諡號)이다. 이처럼 세조의 호칭은 묘호, 명나라에서 내려준 시호, 존호, 신료들이 올린 시호의 순서로 되어있다.

▴ 대한제국 이후에는 고종이 황제에 오름으로써 중국의 속국으로서의 제후국 체제를 청산했다.
이에 따라 그 전에 중국황제로부터 받았던 시호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 그렇다. 우리가 보통 ‘태조’‘, 세종’하고 부르는 왕명은 바로 왕의 ‘묘호’임을 알 수 있다.

-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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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필자 김충남 강사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堂)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 대전시민대학,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 대전 KBS 1TV 아침마당 "스타 강사 3인방"에 출연

김충남의 강의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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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화요일 14시 ~ 16시) 논어 + 명심보감 +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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