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경이 막 지날 시각, ‘군’은 대문 밖에 나와 그를 기다렸다. 세상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중천에 뜬 보름달만 유난히 밝은 날이었다. 잠자리를 뒤척이다 법장이 상전과의 약속을 어길까 부스스한 모습으로 문밖을 나왔다. ‘군’은 어둠이 내린 밤이라 그런지 대담했다. 법장의 손을 덥석 잡고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방앗간 쪽으로 그를 데려갔다.

“아씨 어디로 가시려구요?”

“조용한 곳에 가서 이야기나 나누자꾸나.”

하인인 신세에 태사의 따님이 이끄는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군’은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아랫것 임에도 너무나 곱다고 생각했다.

‘군’은 앞질러 방앗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곳은 온통 어둠만 가득 고여 있었다. 희미하게 연자방아와 곳곳에 쌓아놓은 곡식 가마가 보였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달빛이 유난히 감미로웠다. 법장은 서먹했다. 어둠속에 피 끓는 두 남녀가 있다는 것 자체가 가슴을 떨리게 했다. 그러지 않으려 했지만 맥동이 제 마음대로 뛰고 있었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군’은 법장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옆에 앉혔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젊은 남녀가 어둠속에 단둘이 앉아 머문 몇 각이 삼추와 같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구요?”

법장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법장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너무나 잘생긴 모습이었다. 피부가 얼마나 희든지 어둠속에서도 얼굴이 달덩이처럼 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군’도 할 말이 없었다. 젊은 사내와 가까이 앉아 있자니 가슴이 콩닥거렸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상황이 닥쳐오자 머리가 텅 비었다. 그렇다고 일상적인 잡담을 나누기에는 너무 늦은 밤이었다. 숱한 아름다운 말들이 머리에서만 맴돌았지 입 밖을 나오지 않았다. ‘군’은 마른침을 삼켰다.

“할 말이 없으면 들어가시지요. 아씨.”

법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군’은 와락 사내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입술로 사내를 덮쳤다.

“왜 이러시옵니까? 아씨. 태사 나리께서 아시면…….”

법장이 엉덩이를 뒤로 뺏지만 ‘군’의 몸부림은 막무가내였다. 그녀는 법장의 입술을 더듬고 이어 온몸 구석구석을 여린 손길로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길이 몸 깊숙이 들어오자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져버렸다.

법장도 사내인지라 그녀의 행동이 싫지 않았다. 손을 어쩌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달아오른 몸이 자신의 의중과 달리 움직였다. 법장은 그녀를 마다하지 않고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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