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목록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유성복합, 어둠 속 지방권력의 산물

[김학용 칼럼]

김학용 주필2017.06.19 13:23:33

만약 삼성건설이 중앙정부 사업과 관련, 협약체결 시한을 넘겨 탈락 판정을 받았으나 사흘 뒤에 협약서를 제출했다면 정부가 받아줄 수 있을까? 정부 스스로 삼성의 탈락 사실을 확인하면서 언론에 보도자료까지 뿌린 상황이라면 이를 뒤집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장관은 물론 대통령 탄핵사태까지 벌어질 일이다. 대기업이라 해도 뒷거래로 할 수 있으나 이런 일을 보란 듯이 대놓고 할 수는 없다.

유성복합터미널, 정부 사업이었다면 대통령 탄핵감

지방에선 그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아무도 문제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3년 만에 사업이 중단된 2700억 원짜리 유성복합터미널사업은 계약 과정부터 황당했다. 계룡건설 등 지역건설사가 참여한 롯데컨소시엄이 협약체결 시한을 넘기자, 대전도시공사(대전시)는 결렬을 선언하고 후순위 업체와 협상하겠다는 보도자료까지 냈다. 그러나 도시공사는 시한 만료 3일 뒤에 롯데가 낸 신청서를 받아들여 사업을 추진해왔다.

수험생이 접수 마감일을 지나 낸 원서를, 대학 측이 인정해서 받아들이고 합격시켜준 꼴이다. 이 때문에 탈락한 수험생이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지만 소용없었다. 법원의 판단은 1심과 2심에서 오락가락했으나 대법원은 결국 도시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당시 한 퇴직공무원은 “내 평생 이런 식의 계약은 처음 봤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삼성과 정부가 이런 식으로 계약을 했을 경우에도 법원이 삼성 편을 들어줄 수 있을까? 많은 언론이 주목하고 국민들이 관심있게 지켜보는 경우에도 대기업의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많은 시민들이 유성복합터미널 사업 계약상 문제점에 관심을 갖고 지켜볼 수 있었다면 ‘황당한 계약’은 체결되기 어렵고, 법정에서 인정받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언론이 있는 중앙과 언론이 없는 지방

중앙에선 상식을 벗어난 정책과 비리가 종종 세상에 드러난다. 중앙이 지방보다 허술해서가 아니라 중앙에는 그래도 언론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워치독(감시견)’이 활동한다.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진보 언론이 날을 세우고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보수언론이 각을 세운다. 그 과정에서 비리와 부패가 세상에 드러난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도 그런 과정을 밟았다.

지방은 다르다. 지방은 언제부턴가 어둠에 갇혀 있다. 지방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 수 없다. 지방의 최고 권력인 시·도지사를 감시하는 워치독은 거의 없다. 중앙에는 야당지도 있으나 지방에는 여당지만 있다. 야당지 흉내라도 냈다가는 언론사의 존망이 위태로우니 언론사만 탓할 일도 아니다.

시·도지사는 지방의 슈퍼갑이다. 거의 모든 일은 시·도지사가 생각하는 대로 끌려간다. 대전시의 상수도 민영화 저지처럼 일부 시민단체 등이 결사적으로 저항해서 막아내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비율로 치면 10%도 못 될 것이다. 대부분은 시·도지사가 결정하면 그 일이 옳든 그르든 문제가 터질 때까지는 진행이 된다.

대전시가 벌이고 있는 사업 가운데도 상식을 벗어난 결정이 여러 건 있다. 유성복합터미널사업의 황당한 계약도 그 중 하나다.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갑천천변고속화도로 부지를 몰래 없애버리고 발표조차 안한 것도 시민들이 기겁할 일이다. 어둠 속에서 이뤄진 일이므로 시민들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 멀쩡한 상수도를 민영화한다는 계획도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견제받지 않는 지방권력에 의해 망가지는 지방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시·도지사들을 만났다. 그는 제2국무회의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내년 개헌 때 이 부분도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지방분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시·도지사의 정치적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게 분명하다. 주로 국무총리가 주재하도록 해서 제2국무회를 ‘껍데기’로 만들지 않는다면 시·도지사의 힘은 더 커질 것이다.

문제는 시·도지사의 힘만 커지고 이를 견제할 세력은 없다는 점이다. 민선 시·도지사는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지방권력이다. 과거 시·도지사들은 중앙의 감시도 받았고 언론의 견제도 받았지만 이제는 감시세력이 없다. 지방의회 언론 시민단체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시·도지사의 독선이 과거보다 훨씬 심해졌다.

시·도지사는 어둠 속에서 제왕 노릇을 하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매체는 늘었으나 지방권력 감시 문제에 관한 한, 오히려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사업이든 인사든 부패와 비리가 더 횡횡하게 될 것이다. 10~20년 전과 비교해보면 이미 훨씬 썩고 병들어 있다. 유성복합터미널은 지금이라도 다시 추진할 수 있지만 한 번 훼손된 자연하천 갑천은 되살릴 수 없다. 지방은 어둠 속에서 독불장군 지방권력에 의해 망가져 가고 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  
  •  
  •  
  •  
  •  
  •    
  • 맨 위로



시민방송